“누구 하나 나에게 어떤 지시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지난 14일 중의원 예산위원회)
‘사학 스캔들’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자신과의 연관성을 부인해온 아베 신조 총리가 유착관계에 있던 특정 사립학교를 직접 지원한 정황이 담긴 문서가 나왔다. 부하직원에게 책임을 떠넘겨온 아베 총리의 ‘꼬리 자르기’도 불가능하게 할 ‘핵폭탄급’ 문건의 등장에 일본 정가가 술렁이고 있다.
22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전날 나카무라 도키히로 에히메현 지사가 참의원에 가케학원 수의대 신설 당시의 정황이 정리된 내부문건을 보고하면서 아베 총리가 수의학부 신설을 직접 주도했다고 의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문서에는 지난 2015년 2월25일 가케 고타로 이사장이 수의학원 신설계획을 아베 총리에게 설명했으며 당시 아베 총리가 ‘새로운 수의대의 생각은 좋네요’라는 의견을 밝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그동안 가케 이사장과 수의학부 신설 문제를 논의한 적이 없으며 이마바라시가 전락특구로 지정된 지난해 1월에야 계획을 알게 됐다고 주장해온 아베 총리의 입장과 정면 배치된다.
가케학원은 수의학부 신설을 금지하는 일본 정부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산하 오카야마이과대학의 수의학부 신설 허가를 받아냈다. 이후 일본 정부가 대학이 위치한 에히메현 이마바라시를 국가전략특구로 지정해 규제를 해제한 정황이 발견되고 아베 총리와 가케 이사장이 30년 지기라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특혜 논란이 일었으나 아베 총리는 사안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해왔다.
하지만 에히메현 문건에는 가케 학원이 총리실과의 접촉을 원했던 정황이 대거 들어 있어 아베 총리가 수의대 설립에 직접 관련됐을 것이라는 의혹에 힘을 싣고 있다. 2015년 2월 가케학원 관계자가 에히메현 공무원과 만나 “업무로 바쁜 아베 총리와 가케학원 이사장이 만나지 못하는 사이 관저에 (학원 측)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 이달 중순 가토 가쓰노부 내각관방 부장관과 면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아사히신문은 아베 총리가 이날 에히메현 문서에 대해 “지적한 날에 가케 이사장과 만난 적이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이어 “총리관저 기록을 조사했지만 (회동에 대해) 확인할 수 없었다”며 “수의대 신설과 관련해 가케 이사장에게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고 내가 이야기를 한 적도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직접 연관된 증거 문서가 나온 이상 지금처럼 ‘꼬리 자르기’로 혐의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입헌민주당 등 야당은 가케 이사장과 야나세 다다오 전 총리비서관의 증인 소환 등 추가 진상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야당뿐 아니라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이시다 노리토시 정조회장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을 요청한다”며 총리를 압박하고 나서 사학 스캔들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는 형국이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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