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6일 소리 소문도 없이 은밀히 판문점 북측 지역의 통일각을 방문해 2시간 동안 2차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넘어왔다. 으리으리한 의전이나 과도한 경호도 없었다. 마치 옆 동네 친구 집 마실 가듯 다녀왔다. 이는 사상 최초로 남북 정상 간 ‘수시 회동·회담’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28일 오전 춘추관 기자회견에서 “앞으로도 필요한 경우 (남북 정상이) 언제든지 서로 통신하거나 만나 격의 없이 소통하기로 했다”고 2차 정상회담 결과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이뤄진 이번 회담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며 “남북은 이렇게 만나야 한다”고 전했다.
이번 2차 남북 정상회담의 가장 큰 의미는 양측이 ‘6·12 북미 정상회담’을 어떻게든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점이다. 두 정상은 북미회담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긴밀히 상호 협력을 하기로 했다. 또한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해야 할 의제에 대해 북미가 실무협상을 통해 충분히 사전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문 대통령이 강조하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동의했다. 따라서 사전실무협상을 위한 문 대통령의 중재 노력이 이번주부터 한층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핵심의제가 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과 스케줄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가 개입하기보다는 북미가 능동적으로 절충해 사전조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북미가 말하는) 비핵화의 뜻이 같다고 해도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로드맵은 양국 간 협의가 필요하고 그런 과정이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 위원장도 이번 회담에서 비핵화 관련 정세와 관련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결과도 만들고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사실 북한은 이미 미국이 원하는 수준의 CVID 로드맵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할 경우 체제 유지를 위한 다른 확실한 보장을 미국이 어떻게 해주는지에 따라 북한이 CVID를 최종 선언하고 이행할지가 달렸다. 문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에게 불분명한 것은 비핵화 의지가 아니라 자신들이 비핵화할 경우 미국이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체제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것에 대해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한 걱정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 같은 체제 안전 보장 방안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적대행위 금지, 상호 불가침 약속을 다시 한다든지 현재의 (한국전쟁) 정전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협상을 개시한다든지, 또는 (남북미) 3국 간에 종전선언을 한다든지 이러한 방안들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소개했다. 또한 한미 정상이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는 과정에서 이번에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하면 미국이 대규모 경제협력을 할 의사를 갖고 있다고 몇 번 이야기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남북 정상의 이번 재회는 최근 들쭉날쭉했던 북미관계와는 별개로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선언적 의미도 담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남북 정상 간 수시·정례회담 약속이 지켜진다면 이르면 6월, 늦어도 9~10월 무렵에는 3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이번 2차 정상회담에서 “앞으로 이야기가 좋은 결실을 맺고 가을 초에 평양으로 오시면 대통령 내외분을 맞이하겠다”면서 “가을에 평양에 (문 대통령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북 정상이 오는 6월1일 개최하기로 한 남북 고위급회담에서는 ‘판문점 선언’에 담겼던 상호 적대적 행위의 구체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놓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큰 틀의 의견교환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이후 열릴 군사당국자회담에서 한미 합동군사훈련과 주한미군의 한반도 전략자산 배치 문제를 놓고 구체적인 협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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