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주변 열강인 일본과 중국·러시아가 각각 미국, 북한과의 회동을 예고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논의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열강들의 막판 치열한 수싸움이 예상된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과의 전통적 우방관계를 내세우며 정세 주도권을 잡으려고 하고 일본은 한반도 정세에서 일본이 배제되는 ‘패싱’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아베 신조 총리가 총력전을 펼친다.
30일 홍콩 동방일보는 홍콩 인권단체인 중국인권민운정보센터 관계자를 인용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3자 정상회의가 다음달 9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릴 것으로 관측된다고 보도했다. 3자 정상회의가 칭다오에서 열리는 것은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안보·경제협력체인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가 다음달 6∼9일 칭다오에서 열리기 때문으로 중·러 양국은 대북협력을 강화하고 한반도 정세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북한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칭다오로 김 위원장을 초청해 3국 회담을 연다는 복안이라고 이 매체는 전했다. 신문은 이어 “김 위원장은 이미 다롄 방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지역적으로 가까운 칭다오 방문에 큰 어려움은 없다”면서 “SCO 정상회의와 김 위원장의 방문 가능성 등으로 칭다오와 다롄 등의 치안이 강화된 상태”라고 전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핵 협상 과정에서 주변국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중국은 대북 이슈에서 코드를 맞춰왔던 러시아와 함께 공조체제를 강화하고 향후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한 주도권 유지에 안간힘을 쏟는 모습이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도 북중러 3자 정상회의가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싼 세 나라 이해관계의 공통분모가 작지 않기 때문이다. 북미회담을 앞두고 김 위원장은 뒷배인 중국에 다시 한 번 확실한 보험증서를 만들어놓을 수 있고 여기에 러시아라는 전통적인 우군까지 확보해 협상에서 든든한 제2의 후원자를 만들 수 있다. 중국의 경우 한국과 미국에서 차이나 패싱(중국 배제)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는 가운데 북중러 정상회의를 통해 역할론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다는 점에서 북중러 회의에 내심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언급을 자제해왔던 러시아도 31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북한에 보내는 등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이날 러시아 외무부는 “양국 외무수장 간 회담이 예정돼 있으며 회담에서는 양자관계 현안에 대한 논의와 한반도 주변 정세 및 다른 국제·지역 문제에 대한 의견 교환이 이뤄질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최근 북미 정상회담이 취소되자 “양측이 서로에게 수용 불가능한 요구를 자제해야 한다”며 미국의 최단기간 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방식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반면 일본은 다음달 7일 미일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하는 등 미일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과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도 29일(현지시간) 하와이 히캄기지에서 열린 회담에서 북한 핵·미사일 개발의 완전한 포기를 위해 미일 당국 간 연대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거듭되는 미국과의 접촉을 통해 미국이 북한의 중·단거리미사일 폐기와 일본인 납치 문제를 북미 정상회담에서 거론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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