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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살아나려면 품격 있는 정치 해야

■데스크 진단

'정치 터줏대감' 오만에 빠져

독설·막말로 시대정신 외면

등돌린 민심 선거로 '심판'

철저히 반성하고 혁신 필요

합리적 설득, 치열한 공부

미래보여 주는 정치해야

국민마엄을 얻을 수 있어

서정명 정치부장 vicsjm@sedaily.com

보수가 와르르 무너졌다. 진보세력과 함께 견제와 균형을 이루며 한국 역사와 정치를 이끌어온 보수가 고꾸라졌다. 때로는 동지처럼 손을 맞잡고 때로는 경쟁자로서 뜨거운 논쟁을 벌여야 할 상대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비극(悲劇)이다. 6·13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등 ‘그럴듯한’ 보수의 이름으로 전장에 나섰던 야권이 참패했다. 광역단체장 17곳 중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14곳을 장악했고 보수는 가까스로 텃밭인 대구시장과 경북지사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재보궐선거는 12개 중 1곳만 건졌다.

패장(敗將)의 말로는 비참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미래당 대표는 14일 차례로 사퇴했다.

홍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오늘부로 당 대표직을 내려놓는다”며 “부디 한마음으로 단합하셔서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정당으로 거듭나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이어 “우리는 참패했고 나라는 통째로 넘어갔다”며 “모두가 제 잘못이고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고해성사를 했다. 유 대표도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이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새로운 비전과 정책을 고민하겠다”며 “처절하게 무너진 보수정치를 어떻게 살려낼지 혁신의 길을 찾겠다”고 다짐했다. 한국 보수정치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실토했고 뼈를 깎는 혁신을 약속하며 자리를 떠났다.★관련기사 6·7·10·25·26·27면

한국 보수가 이렇게 처참한 지경에 빠진 것은 국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고 시대 정신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의 터줏대감이라는 오만과 자만에 빠져 국민들의 상처를 보듬지 못했다. 이제 보수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먼저 보수의 품격을 높여야 한다. 독설과 천한 언어로는 삶에 지친 서민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없다. 막무가내로 민주당에 대해 험담을 하면 보수층이 결집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라는 착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민주당이 잘할 때는 박수를 쳐주고 어긋난 길을 갈 때는 비방이 아니라 폐부를 찌르는 합리적인 비판을 가해야 한다.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욕설과 막말이 결국 보수당의 몰락을 자초했다.

이제 보수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얘기해야 한다. 보수의 눈은 뒤가 아니라 앞을 향해야 한다. 민주당이 적폐청산에 함몰돼 있을 때 보수는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 과거를 단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제대로 먹고사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새로운 경제정책 비전과 정책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상대방의 발목을 잡고, 트집이나 걸고, 마냥 몽니를 부리는 것으로는 백 년이 지나도 국민들의 돌아선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



보수가 치열하게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보와 보수를 이분법으로 나눈 채 지지 세력에게만 호소하는 선동정치의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면 어떤 정책대안이 있는지, 청년 일자리는 어떻게 창출할 것인지, 기업 투자의욕을 어떻게 고취할 수 있는지 밤을 새워가며 궁리해야 한다. 공부하지 않는 보수는 선동만 하게 된다. 과거 선전과 선동을 일삼았던 진보세력이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세련된 진보로 탈바꿈하는 것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내부혁신은 필수다. 유능한 사람을 발탁하지 않고 자기 사람을 심으면 조직은 망한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 당 대표·지도부와 가까운 사람을 전략 공천하고 지분 싸움까지 벌이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유능하고 참신한 인재를 널리 구하기는커녕 흘러간 인물들을 줄줄이 기용하면서 국민들의 눈총을 샀다. 선거에 나선 후보자가 당 대표의 유세장 지원에 손사래를 치는 촌극도 벌어졌다. 서울경제신문 펠로(자문단)인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일반 유권자의 눈에는 권력만 추구하는 이익집단으로 비쳤다”며 “보수라는 가치의 문제는 사라지고 권력이라는 이름의 이익만 지배하는 집단으로 보였다”고 꼬집었다.

지금 한국당 지지율은 11%, 바른미래당은 5%에 그친다. 두 정당의 지지율을 합해도 민주당(53%)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번 선거에서 한국당은 ‘TK당’으로 쪼그라들었고 바른미래당은 존재감을 아예 상실했다. 국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보수의 몰락 그 자체가 아니라 몸집을 키운 민주당이 자만심에 빠져 독주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최저임금·상법개정안·규제개혁·재정정책 등은 민생과 기업경영에 직결된다. 혹여 민주당이 다른 목소리에 귀를 닫아버리면 이를 견제할 수단이 없다. 한쪽 날개가 부러져 추락하고 있는 보수정당이 빨리 전열을 정비해 살아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절대권력이 몸집을 더 키울 때 정치는 한쪽으로만 뱅뱅 돌 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보수는 눈물을 닦을 시간도 없다. 국민들은 반성 없는 눈물에 감동하지 않는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왜 실패했는지, 왜 국민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는지 처절하게 반성하면서 혁신해야 한다. 그것만이 국민들에게 사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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