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5일 고(故)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이번 서훈에 대해 일각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지만 정부는 ‘관례 존중’ 원칙을 강조하며 쐐기를 박았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의 조문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 전 총리에 대해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기로 했다”며 “문 대통령은 추서하러 (빈소에) 가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유족에게 예우를 갖춰 애도를 표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무궁화장은 국가 원수와 배우자를 제외한 대한민국 국민이 받을 수 있는 최고 등급의 훈장이다.
이어 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의 조문은 이것으로 갈음한다”면서 문 대통령이 직접 빈소를 찾을 가능성이 있다던 정치권 일각의 예상을 일축했다. 김 전 총리의 공과를 둘러싸고 찬반 논란이 정치권을 넘어 세간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문 대통령이 직접 빈소를 찾을 경우 관련 논란은 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보 진영 등에서는 김 전 총리가 5·16 쿠데타를 기획하고 군부 독재정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이유를 들며 이번 서훈 자체를 강력히 비판했다.
문 대통령이 김 전 총리를 직접 챙겨야 할 만큼 개인적인 인연이 없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총리가 정계에서 사실상 물러난 후 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섰기에 두 사람의 정치 활동 시기가 겹치지 않고 정치 철학도 서로 다르다. 오히려 김 전 총리 생전의 문 대통령과의 관계는 ‘불편하다’는 말로 정의될 정도다. 김 전 총리는 지난 대선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난 뭘 봐도 문재인이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며 “문재인이가 얼마 전에 한참 으스대고 있을 때 한 소리가 있어. 당선되면 김정은이 만나러 간다고. 이런 X을 뭐를 보고선 지지를 하느냔 말이야”라며 거친 언사를 거침없이 늘어놓았다. 문 대통령 역시 김 전 총리에 대해 냉담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월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정치는 흐르는 물과 같다. 고인 물은 흐르지 않고 썩는다. JP는 오래전의 고인 물”이라고 평가했다. 자신에 대한 김 전 총리의 악평에 대해서도 “JP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말로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과거 현직 대통령이 전직 총리의 조문을 한 사례가 일관되지 않는다는 점도 판단 근거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현직 대통령이 전직 총리의 빈소를 찾은 사례는 지난 1974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최두선 전 총리 문상, 2011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박태준 전 총리 조문, 2013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남덕우 전 총리 문상 정도다. 이 역시 대통령 개인 인연에 따른 조문이었다.
한편 김 장관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날 오후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유족에게 훈장을 전달했다. 촉박한 장례 일정을 감안해 ‘선(先) 추서-후(後) 국무회의 의결’로 수순을 밟은 것이다. 김 장관은 “관례에 따라 역대 국무총리를 지낸 분들은 훈장을 추서했고 관례라는 것도 존중돼야 한다”며 “대한민국 정부를 책임졌던 국무총리의 역할만 해도 충분히 노고에 대해 (정부는 훈장으로) 감사를 표시해왔다”고 강조했다.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도 이날 빈소에서 JP 훈장 추서 건에 대해 “국민 여론이 다 우호적”이라며 “전반적인 논조는 (고인의) 발자취를 기리는 쪽”이라고 평가했다. 조배숙 민주평화당 대표도 문상하며 “망인에 대해 논란하는 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는 예의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다만 빈소를 찾은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애도를 표한 뒤 “훈장 추서는 이것과는 별개 문제”라며 “유감을 표명한다”고 선을 그었다. /민병권·양지윤기자 newsroom@sedaiy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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