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주 52시간 근무제 시대를 맞아 손으로 사인하는 종이 결재문서를 없앤다. 보고 역시 파워포인트(PPT)를 이용한 발표 형태를 최소화하고 전화나 문자 방식을 집중 활용하기로 했다.
이원희(사진) 현대차 사장은 11일 사내방송에 출연해 “일하는 방식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며 이 같은 방향을 제시했다.
먼저 이 사장은 “올해 회사는 전환기에 서 있다”며 “특히 주 52시간 근무 법제화로 오래 일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이 사장은 “첫째, 이제부터 수기결재를 지양하고 전자결재로 일원화해달라”며 “서명이 날인된 수기결재 문서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식 문서로 활용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 사장은 “전자결재를 할 때 내용에 대한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면 실무자에게 전화나 메신저, e메일 등을 통해 물어보면 된다”고까지 말했다. 이는 프린트된 결재문서에 익숙한 고위 간부들이 바뀌지 않을 것에 대비한 일종의 노파심에서 나온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 사장은 “둘째, 보고 역시 파워포인트로 만든 문서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구두·유선·문자·e메일 등 적절한 채널을 활용하라”고 강조했다. 이 사장의 말은 형식에 집착하지 말고 소통에 중점을 두라는 의미다. 그는 “보고의 ‘형식’보다는 보고의 ‘핵심 내용’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사장은 보고 간소화에 대해서도 고위 관리자들을 향해 거듭 호소했다. 그는 “리더들은 직원들이 보고서 작성에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몰입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라”고 말했다. 또 “리더들은 불필요한 업무 관행을 제거하고 소통의 본질에 집중하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각별히 유념해달라”고 경고(?)했다.
재경 출신인 이 사장은 사무직 직원들이 사내 위계와 절차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이 때문에 각 부서가 이 사장의 이번 요구를 흘려 들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내에서는 이 사장이 단순히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번 요구를 한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는 분위기다. 현대차가 보수적인 조직 특성 탓에 세상이 변하는 속도에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이번 지시가 나왔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앞으로 애플·구글과 같은 정보통신기술(ICT) 업체와도 경쟁해야 한다”며 “그들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시장에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더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더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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