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가정은 국내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한 매체의 경쟁력과 다름 없는 단독 기사를 타 사에 공유하는 문화가 생경하기 때문이다. 전체 산업군을 보아도 경쟁 기술을 나눈다는 이야기를 듣기 어렵다. 최근 10년 새 비영리 온라인 매체가 우후죽순 생겨난 미국 언론계에서는 협업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기성 매체는 지면과 방송 등 플랫폼을 제공하고 비영리 매체는 심층 탐사보도 기사를 제공하는 형태의 협력 구조가 마련된 것이다.
지난 12일 미국 뉴욕에 위치한 비영리 탐사보도 온라인 매체인 ‘마샬프로젝트’를 찾았다. 2014년에 설립된 이 매체는 법조 분야를 전문적으로 심층보도하며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기성 언론사 100곳과 활발하게 협력하고 있다. 마샬프로젝트의 기사는 자체 플랫폼 뿐만 아니라 기성 언론사의 지면이나 방송, 인터넷 등을 통해 송출된다. 기성 언론사는 심층성을 갖춘 탐사보도 기사를 얻기 위해 다양한 플랫폼을 제공하고 마샬프로젝트는 취재 기사의 도달율을 높이기 위해 기성 언론사에 기사를 무상 제공하는 식이다. 전 뉴욕타임스 편집장인 빌 켈러 마셜프로젝트 편집장은 “지역 신문사나 방송국에서는 시간이나 비용 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 탐사보도를 잘 하지 않는다”며 “그럼에도 탐사보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함께하고 있으며 어느 매체와 함께할 지도 고민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방문한 비영리 탐사보도 온라인 매체 ‘프로퍼블리카’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사무실에 발을 들이자마자 미국 유력 신문사들의 1면에 실린 프로퍼블리카의 기사 액자들이 빼곡히 진열돼 있었다. 프로퍼블리카는 신문을 비롯해 방송, 라디오 등 미국 전역 160여 개의 언론사와 전략적 협업 관계를 맺고 기사를 공동 제작해 보도하고 있다. 협업 보도 중 하나로 제방 때문에 옆 동네가 홍수 피해를 봤다는 내용의 ‘잘못된 일리노이주 미시시피강 제방’ 탐사기사를 예로 들 수 있다. 프로퍼블리카의 환경 전문 기자와 일리노이주 알톤 지역신문사인 ‘더 텔레그래프 오브 알톤’의 기자가 함께 기사를 만들고 같이 보도했다.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아메리칸대학교의 찰스 루이스 교수가 이끄는 비영리 저널리즘센터인 IRW(Investigative Reporting Workshop)도 전통 매체와 전략적 협업 관계를 맺고 자신들의 기사를 내보낸다. 워싱턴포스트, NBC, 공영방송 PBS, 케이블방송 쇼타임 등이 이 매체의 파트너다. 특히 IRW가 선발한 대학생 인턴을 워싱턴포스트 신속보도 대응팀(스쾃팀)에 파견 보내는 등 인재 양성 부문에 있어서도 협업을 만들고 있다. 미국 탐사보도의 대가로 불리는 찰스 루이스 교수는 “워싱턴포스트 탐사보도 에디터가 우리 대학의 교수이자 IRW의 에디터를 겸임하고 있어 협업이 수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전통매체와 신생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가 전략적 협업 관계를 맺는 이유는 각 사의 장점을 활용해 ‘윈윈 효과’를 얻을 수 있어서다. 전통매체는 광고로부터 자유로운 비영리매체가 만든 양질의 탐사보도 기사로 지면을 만들 수 있다. 비영리 매체는 기성 언론사들의 대형 플랫폼을 이용해 자신들의 기사를 더 많은 독자에게 소개할 수 있다.
조민희 프로퍼블리카 홍보담당자는 “전국적인 관심을 얻고자 하는 아이템을 다루려다보니 이슈 파급력을 위해 기성 매체와의 협력이 필요했다”며 “‘훌륭한 콘테느는 반드시 통한다’는 확신 하에 자체 단독보도를 포기하고 대형 언론사와 손을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뉴욕·워싱턴=이지윤기자 lucy@sedaily.com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KPF 디플로마-탐사보도 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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