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이어지고 있는 불볕더위에 올여름 최대 전력수요가 정부의 전망치를 훌쩍 뛰어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쓰고 남는 전력을 뜻하는 공급예비율도 4년 5개월 만에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더욱이 이제 막 무더위가 시작되는 7월이라 8월 들어 전력수요가 더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전력수급에 빨간불이 들어오면서 전력수요 증가율을 낮추고 설계수명이 남은 월성1호기의 조기폐쇄 등을 결정한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도 코너에 몰리게 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24일 최대전력수요가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올여름 처음으로 기업들에 수요감축요청(DR)을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23일 전력거래소 실시간 전력수급현황 따르면 이날 오후 4시25분께 순간 최대전력수요는 9,078만㎾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5일 정부가 하계 수급대책을 내놓으면서 예상했던 최고치 8,820만㎾를 250만㎾ 뛰어넘는 수준으로 원전 2기분의 규모에 달한다. 전력수요는 16일 8,650만㎾로 종전 역대 최고기록을 갈아 치운 이후 연일 신기록 경신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전력수요 급증에 쓰고 남는 전력 비율을 뜻하는 예비율도 급락했다. 15일 33.4%에 달했던 공급예비율은 20일 10.7%까지 떨어진 후 주말 잠시 30%를 회복하는 듯했지만 이날 다시 한 자릿수인 8.3%로 급락했다. 2014년 3월7일(8.1%)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정부는 아직까지 전력수급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날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참석해 “전력수급 위기단계는 예비력이 500만㎾일 때 준비단계이고, 400만㎾가 돼야 관심단계”라며 “아직은 예비력이 1,000만㎾ 내외라 여유가 충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예비력이 400만㎾ 미만이 되면 전력수급 관심단계가 발령되고 공공기관 등에서 냉방기와 조명 승강기 등 사용이 제한된다. 다만 이날 무더위에 순간 예비력은 757만㎾ 수준까지 떨어졌다.
산업부는 24일 최대전력수요에 대해 “다소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DR 시행 여부에 대해 전력수급 여건과 본격적인 휴가철을 앞둔 기업들의 조업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DR는 사전에 전력거래소와 계약한 기업이 피크 시간에 전기 사용을 줄이면 정부가 보상하는 수요관리 정책이다. DR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감축 요청에 응하면 최대 약 400만kW의 전력소비를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산업부는 파악하고 있다.
전력수급에 비상등이 켜지면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입지도 좁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최대전력수요가 연일 신기록을 갈아 치우자 최근 계획예방정비 중인 한울2호기와 한빛 3호기를 조기 재가동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탈원전 반대 목소리를 높여온 야당 등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날 전력 예비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자 자유한국당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공세 수위를 높였다.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회 토론회에서 “정부의 에너지 수요 예측이 과연 맞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고, 김성태 원내대표는 “찌는 무더위에 탈원전 정책을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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