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범위에서 기하와 과학Ⅱ를 제외하는 것을 놓고 교육부와 교육 전문가들이 뚜렷한 입장 차를 보이고 있다. 교육부는 고등학생들에게 과도한 학업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서는 수능 출제범위에서의 제외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교육 전문가 등은 과중한 학업 부담은 잘못된 입시제도로 말미암은 것이지 기하·과학Ⅱ 때문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달리 말해 기하·과학Ⅱ를 수능 출제범위에서 빼더라도 공부량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교육부에서 수능 과목구조 및 출제범위 등을 담당하는 송근현 교육부 대입정책과장은 “현 교육과정 설계상 3학년 동안 수학을 하루 한 시간씩 공부하도록 돼 있는데 기하를 수능 과목에 넣게 되면 7학기 동안 수학을 하루 한 시간씩 들어야 한다”며 “그렇게 되면 어느 한 학기는 수학을 하루 두 시간씩 배워야 한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수능 출제범위에서는 빠지지만 서울에 있는 주요대학에 학생들을 많이 보내는 일반계 고등학교 10곳 중 9곳은 지금도 기하 과목을 개설해놓고 있다”며 “기하·벡터는 이공계로 진학하는 학생 중에도 기계공학 계열을 전공할 학생들에게만 꼭 필요한 것이다. 수능 과목에 넣게 되면 모든 학생이 그것을 배워야 하는데 필요한 학생들만 배우면 된다는 게 교육부의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교육부의 입장을 요약하면 기하와 과학Ⅱ를 수능 출제범위에서 뺌으로써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이다.
교육부의 이 같은 입장에 대해 교육 전문가들과 학생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한 유명학원의 수학 강사는 “출제범위를 넓히든 좁히든 어차피 수능을 보는 학생들은 치열하게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며 “기하·과학Ⅱ를 뺀다고 치자. 학생들 입장에서는 확률과 통계·미적분·과학Ⅰ 등을 더 파고들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쉽게 말해 수능 출제범위에서 기하·과학Ⅱ를 제외한다고 해서 학습의 절대량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런 출제범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으로 봤다. 그는 “어차피 몇 년 안에 기하와 과학Ⅱ가 다시 부활할 것으로 본다”며 “기하와 벡터 수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일부 학생들의 경우 오히려 학습 부담뿐 아니라 사교육 비용도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교육 업체의 한 관계자는 “교육부의 입장이라는 게 결국은 기계공학을 전공하기 원하는 학생들만 기하 등을 공부하고 대학에 들어갈 때 가점을 받으라는 얘기”라며 “기계공학 계열에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변별력을 갖기 위해 기하 등을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사교육이 팽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는 기하를 가르치는 학교가 많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지만 앞으로 기하를 가르치지 않은 고교가 늘어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학교 입장에서는 소수의 학생을 위해 기하 수업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사교육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는 셈이다.
일부 고교 교사들은 학습 부담 경감·가중 논란을 차치하고라도 기하 등의 배제가 학습 동기를 저해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기하·벡터 등을 배우려면 1~2차 함수 등은 이미 숙지한 상태여야 한다”며 “달리 말하자면 지금은 학생들이 기하·벡터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도 ‘선행 과목’을 철저히 학습하고 있는데 수능에서 기하·벡터 문항이 사라지면 그 동인은 어느 정도 약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중학교 3학년이 출제범위에서 기하가 빠진 수능을 볼 때면 특히 상위권 학생들의 불만이 클 것이라는 게 학생들의 전언이다. 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은 “수능 수학을 보면 상당히 까다로운 기하와 벡터 관련 문항이 대개 마지막 한두 문제 정도에 배치된다”며 “결국 수능 수학이라는 게 두어 문제를 맞추느냐, 못 맞추느냐의 싸움인데 수험생들에게 그 경쟁을 못 하게 하면 어떻게 자신의 실력을 어필하라는 얘기인지 잘 모르겠다”고 전했다.
교육부는 오는 8월 2022학년도 수능 과목구조 및 출제범위를 최종 확정한다. /임지훈·진동영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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