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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김겸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 대표] "복원가는 작품 치료하는 의사…'담긴 이야기'까지 되살려야죠"

화가였던 부친 반대로 예술학 전공

호암미술관 보존실 입사했지만

외환위기 여파로 1년만에 해고

日·英 유학 결정한 인생 전환점

뒤샹·달리·백남준 작품 새 생명

이순신 동상·문익환 피아노 등

다양한 근현대 기록물도 되살려

한국, 빠른 복원 강조…능사 아냐

김겸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 대표/권욱기자




복원가라는 직업은 생소하지만 일본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주인공 쥰세이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쥰세이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회화 복원사로 일하며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로도비코 치골리의 작품을 복원한다. 옛 모습을 잃어버린 작품을 복원하는 쥰세이의 모습은 수년 전 헤어진 연인 아오이를 잊지 못하고 관계를 되돌리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과 묘하게 오버랩되기도 했다.

국내에도 많지는 않지만 쥰세이 같은 복원가를 만날 수 있다. 그 중 김겸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 대표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미술품·근현대 유물 복원가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광화문 이순신 동상과 클라스 올든버그의 ‘스프링’부터 로댕, 마르셀 뒤샹, 살바도르 달리, 헨리 무어, 백남준, 권진규, 이성자 등 수많은 유명 작가의 작품을 복원했다. 고(故)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와 문익환 목사의 피아노 등 다양한 근현대 기록물도 그가 복원한 것이다. 특히 최근 복원가의 삶을 담은 에세이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를 출간하면서 또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책이 출간된 지 3주가량 만에 초판 2,000부 중 1,000부 이상이 팔렸고 인터뷰 문의도 꽤 많다. 전문서적치고는 보기 드문 인기다. 최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동 연구소에서 만난 그에게 책에 쏟아지는 관심의 비결을 묻자 사람 좋은 표정으로 웃으며 “아무래도 직업이 조금 특별해서가 아닐까요?”라고 답했다.

복원가의 삶을 담은 에세이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출간된 전례가 없다. 복원가는 ‘보존과학자’로도 불리며 물질을 다루는 만큼 저서의 대부분이 기술서나 복원에 대한 보고서,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복원가는 작품이 다치거나 처치가 필요할 때 이를 치료하는 의사’라고 말하는 김 대표는 환자 한 명 한 명에 관심이 너무 많은 의사다. 그는 “지금까지 복원한 작품 중 마음이 가지 않는 작품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만큼 에세이에는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과 복원가라는 직업을 깊이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 대표가 복원가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작품이 너무 좋아서였던 만큼 그에게 복원작업은 무엇보다 재밌는 일이다.

김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서양화가인 아버지 김수익의 영향을 받았지만 실기 전공을 반대하는 아버지로 인해 미대 안에서 이론을 다루는 예술학과에 입학했다. 졸업한 후 삼성문화재단 호암미술관 보존실에 입사했지만 외환위기 여파로 1년 만에 해고됐다. 그것이 되레 그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보존복원을 제대로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일본 동북예술공과대, 영국 링컨대에서 이론을 공부하고 실습을 경험하며 실력을 다졌다.

런던 링컨대성당 복원작업 등 유학 시절 해외에서 여러 복원 작업을 경험해본 그는 우리나라의 복원은 세계 어느 곳보다 ‘빠름’을 강조한다고 말한다. 김 대표는 “지난 2004년 한 전시관에서 너비 5m, 높이 3m가 되는 거대한 목조각을 5일 만에 복원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고 말한다. 목조각 몇 군데가 깨졌고 표면이 얼룩덜룩해진 것을 복원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외국의 비슷한 사례를 찾아본 결과 작업 기간만 한 달이 걸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10일 남은 개관일 전날 밤까지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김 대표는 학생 한 명과 함께 화장실 한 번 안가고 밥도 대충 때우면서 약속한 기한 안에 복원을 끝냈다. “제가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던 시절에 반 장난으로 세계 빨리 복원하기 대회가 있으면 자신 있다고 말했었죠.”

하지만 복원을 빨리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1311년 완공된 영국 링컨대성당은 자체 복원팀에서 매일 복원을 하고 있으며 성당 전체를 손보는 데 70년이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2008년 어이없는 방화사건으로 불타버린 우리나라의 숭례문은 불과 3년 만에 복원을 끝냈다. 숭례문 복원 공사 후 목재의 균열, 단청의 떨어짐 등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그는 “단시간에 무리하게 공사가 진행된 것은 완료 시점에 보일 외관이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유물을 복원한다는 것은 복원이 끝난 후 드러나는 결과물을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복원 과정을 통해 전통 기술을 전승한다는 의미도 크다”는 것이 김 대표의 주장이다.



김겸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 대표/권욱기자


20년 넘게 해온 복원이 이제는 쉽게 느껴질 법도 할 텐데 그는 여전히 작품을 복원하는 작업은 어렵다고 말한다. “복원 교과서에 조각·유화 등에 대한 복원 방법이 나오거든요. 하지만 모든 작품에 이를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찢어진 유화 작품을 복원할 때 교과서에 나온 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작품에 사용된 캔버스가 다르고 물감이 어떻게 발라졌는지, 어떤 환경에서 있었는지 등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죠.”

지금까지 복원한 작품 중 가장 힘들었던 작품은 무엇이었냐고 묻자 “자신만의 파란색을 만들어낸 작가로도 유명한 이브 클랭의 조각을 복원할 때 애를 많이 먹었다”고 답했다. 손을 댔다 하면 특유의 안료가 묻어나오는 상황이라 손을 대지 않은 채 보수해야만 했던 것. 결국 그는 두 동강 난 조각을 천장에 매달았고 둘 높이를 조금씩 맞춰가면서 접합했다. 그는 연구소에 2년간 ‘입원’해있던 작품도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말한다. 떨어져 깨진 한 유명 외국 작가의 조각으로 작가도 복원할 수 없다고 한 작품이었다. 현대미술 작품은 재료나 기법이 다양한 만큼 작품의 독특한 외형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작업 후에도 작품 외관이 변형 없이 유지되는지 충분히 지켜봐야 했다. 지켜본 결과 처음 작업에서 변형이 생겨 총 3차례나 재작업을 진행했다. 만 2년간 연구소 한구석에 있던 작품에 정이 들 정도였다. 그는 복원 방법을 스스로 창조해나가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보존과학팀 총괄팀장으로 있던 그는 6년 만에 미술관을 나왔다. 그는 “하고 싶은 것을 더 하고 싶어서”라고 미술관을 그만둔 이유를 설명했다. “공무원을 그만둔다니까 속된 말로 미쳤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죠. 하지만 저는 직장 생활이 그렇게 재밌지 않았습니다. 공무원으로서, 행정 팀장·실장으로서 공문서를 만들거나 회의에 참석하는 일에 큰 의미를 느끼지 못했거든요.” 미술관을 나와 지금의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를 열고 미술 수업이 없는 대안 중학교를 찾아 3년간 자원 미술교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의 능력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복원전문가가 많을 것 같은 프랑스에서도 김 대표를 찾는다. 올해 초 전시를 위해 한국으로 들어온 한 유명 프랑스 재단의 설치 작품이 천장에서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는데, 재단 측은 작품을 프랑스 본국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김 대표에게 복원을 부탁했다. 완벽하게 복원된 작품은 현재 중국 상하이에서 전시되고 있다.

김 대표에게 복원가는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물질을 통해서 가치를 복원하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가치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작품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나눠왔던 생각과 이야기입니다. 그 작품이 지내온 역사나 겪어왔던 일들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간에 자국으로 남아 있어요. 복원을 하면서 그 자국을 없애거나 변형을 일으키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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