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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회, 우리가 보듬어야 할 이웃] 영아 권리보호 못하는 출생신고제.."병원서 자동 등록을"

① 버려진 아이들 <하>

미혼부 출생신고 가능하지만 생모 신상 알면 불허

복지지원 못받고 입양 막혀..결국 유기 택하기도

1개월 출생신고 의무기간 줄여 방치 최소화 필요

비밀출산제는 "유기보다 낫다""책임감 약화" 팽팽

서울 관악구 난곡로에 위치한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자원봉사자가 베이비박스를 통해 버려진 아동에게 분유를 먹인 뒤 잠을 재우고 있다./송은석기자




동거녀가 출산 한 달 만에 집을 나간 후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는 A(29)씨는 의료 등 기본적인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생후 29개월 된 아들의 출생신고를 두 번 시도했지만 친모의 인적사항이 특정됐다는 이유로 모두 부결됐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일명 ‘사랑이법’으로 불리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미혼부의 출생신고가 가능해졌지만 법원의 경직된 법 해석으로 A씨와 같은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사랑이법은 생모의 이름·주민등록기준지·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 생부의 출생신고를 허용한다. 이전까지 미혼부는 생모의 인적사항을 모르면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다. 출생신고는 원칙적으로 생모가 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권영실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A씨는 법원이 산부인과를 통해 신상명세를 받아 아이 엄마를 특정했다”며 “이 경우 사랑이법의 전제인 생부가 생모의 인적사항을 모른다는 사실이 성립하지 않아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제도 개선에도 불구하고 현행 출생신고제가 여전히 허점을 안고 있어 아동 권리 보호에 미흡할 뿐 아니라 영아 유기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출생신고제는 입양제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보다 세밀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2012년부터 시행된 입양특례법은 출생신고가 이뤄진 아동에 대해서만 입양이 가능하도록 했다. 사회·경제적 이유로 아동을 양육하기 힘든 미혼부모들은 출생신고에 대한 부담 때문에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아기를 보호시설에 맡기기보다 유기를 선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송은석기자


아직 허점이 많은 출생신고제를 보완하는 방안으로는 ‘출생 자동 등록제’가 꼽힌다. 부모가 ‘신고’를 해야 아이의 출생이 인정받는 기존 방식 대신 아이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사실만으로 그 출생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출생 미신고에 따른 아동 복지 사각지대가 큰 폭으로 줄어든다고 입을 모은다. 출생 자동 등록제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의 권고 사항이기도 하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협약은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될 것’을 요구한다”며 “대부분 선진국은 아동의 출생을 부모의 신고 여부가 아닌 출생 즉시 의료기관이 등록하는 시스템을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국가가 의료기관을 통해 곧장 출생을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프랑스에서는 병원에 출생신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의료계 반발에 부딪혀 출생 자동 등록제 시행 논의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병원들은 의료인이 공무원이 아닌데도 행정업무를 대신하면 업무 부담이 가중된다며 반발한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현행 의료 시스템 내에서 무리 없이 구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병원 분만율은 99%에 달하고 국민건강보험의 전산 시스템을 활용하면 추가 비용과 업무부담 없이 새로운 제도를 단기간 내에 실행할 수 있다”면서 “출생신고제는 가정분만율이 높던 시기에나 적합했던 제도인데 지금까지 유지하다 보니 아동 유기 등 각종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장 출생 자동 등록제를 도입하기 힘들다면 현행 출생신고제의 두드러진 문제점부터 바꾸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행 출생신고제에서 부모는 아이 출생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신고할 의무가 있다. 이 교수는 “산모와 신생아의 건강 관리는 출생 후 1~2주가 가장 중요한데 현 제도에서는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기 전까지 국가 차원의 관리가 불가능하다”면서 “심한 경우 출생 후 사망하면 아예 신고조차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집계하는 ‘영아사망률’ 통계는 국제적으로도 불신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출생신고 1개월 기준을 위반할 경우 부과되는 과태료가 5만원에 불과해 아동 유기 등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출생신고를 반드시 해야 하지만 신고기간 내 하지 않더라도 과태료가 적어 무시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전했다.

출생신고 의무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10일로 단축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이탁건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1개월에 이르는 출생신고 의무기간을 10일로만 줄여도 아동이 방치되는 기간을 20일가량 줄이는 효과가 있다”며 “이는 간단한 법 개정으로도 가능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아동 유기를 줄이기 위해 비밀출산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는 반발도 만만치 않다. 비밀출산제는 임산부가 원하는 경우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출산하고 가명으로 자녀 출생등록을 할 수 있는 제도다. 사회·경제적 이유 등에 따라 실명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임산부에게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도록 하고 이 경우 친생부모와 관련된 정보는 법원이 관리한다. 비밀출산제에 대해 ‘혼외 자녀 출생기록이 남는 게 두려워 아이를 유기하도록 하는 것보다 낫다’는 주장과 ‘오히려 친부모의 책임성을 약화시켜 아동 유기가 늘어나는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팽팽히 맞선다.
/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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