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변사는 조선 왕조의 국가 정책을 수립하는 최고 의결기구였다. 지금의 국무회의 같은 역할을 했다. 지난 1510년 의정부의 삼정승과 병조의 주요 인사, 일선의 장수들이 그해 일어난 일본의 침입(삼포왜란)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정치·경제·외교·문화 등 모든 문제에 관여하고 참석자도 전 부서로 확대됐다. 정세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비변사는 의정부나 육조 등과는 달리 국왕이 거처하는 궁궐에 따라 장소를 옮겼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의해 경복궁이 불탄 후 국왕은 주로 창덕궁에 머물렀기 때문에 비변사도 창덕궁 앞에 위치했다. 길 건너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이 보인다. 표지석에는 “조선시대 외적의 방어와 국가 최고 정책을 논의하던 관아터. 중종 때 창설되어 흥선대원군에 의해 폐지되었음”이라고 적혀 있다. /글·사진=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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