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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칼럼] 가짜 뉴스, 언제까지 놔둘 셈인가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사회분열 부를 악의적 허위 뉴스

정부 직무유기 속 SNS 타고 기승

높아진 언론자유, 가짜의 몫 아냐

이제라도 만악의 근원 척결해야





추석 명절 내내 귀를 의심하고 다녔다. 가짜뉴스 탓이다.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들으며 두 번 놀랐다. 첫째는 악의성. ‘문재인 대통령의 건강 이상설’ 정도는 약과 격이다. 쌀값이 오르는 것이 정부의 대북 밀반출 때문이란다. 좋은 쌀을 골라 북한에 보내고 오래 묵은 쌀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느라 돈이 들어 쌀값이 뛰었단다. 둘째는 어처구니없는 가짜뉴스가 먹혀들어간다는 점이다. 아무리 설명해도 가짜뉴스에 대한 믿음이 바뀌지 않는다. 귀가 닫혔다.

불신은 불신을 낳는다. 논리적 검증과 객관적 타당성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증오의 확증편향뿐이다. 믿고 싶은 대로 믿는 ‘라쇼몽(羅生門) 현상’은 기존 언론에 대한 불신까지 초래하기 마련이다. 종합편성채널인 JTBC가 ‘팩트체크’ 프로그램을 통해 사실이 아니라고 보도한 ‘북한의 국민연금 자금 200조원 요구설’도 일부 노년층에서는 진실로 굳어져 버렸다. 누군가의 고의로 지어진 거짓과 오해·억측은 유튜브와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누가 거짓뉴스를 만들어낼까.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주로 정치권에서 나온다. 선거철이면 으레 정파를 가릴 것 없이 상대를 비방하는 언어를 쏟아낸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선거가 끝나면 제자리에 돌아오는 것이 보통이건만 한국에서는 반대다. 갈수록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린다. 지난해 봄철 대선을 치르며 각 정당마다 ‘가짜뉴스 발본색원’을 주장했으나 진전이 없다. 현행법으로도 가짜뉴스의 단속·처벌이 가능하다는데 당국은 도대체 뭘 하나.

당국의 방관 속에 기묘한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주지하듯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크게 높아졌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선정하는 언론자유지수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추락을 거듭하며 70위까지 떨어졌던 한국은 2018년 43위로 올라섰다. 가짜뉴스의 생성자들이 늘어난 언론의 자유 속에 숨었다. 얼마 전에는 대학생을 잡아가던 군 정보기관에서 근무하던 예비역 장성이 공개석상에서 대놓고 가짜뉴스를 퍼트린 적도 있다. 동영상까지 버젓이 돌아다닌다. 가짜뉴스를 근절하려는 의지가 공무원들에게 있는지 의심된다.



가짜뉴스는 사회 분열과 불신의 촉매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짜뉴스는 적과의 전쟁에서 주로 쓰였다. 가짜뉴스는 기원전 13세기의 이집트 람세스 2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외적을 물리치는 데나 사용했던 극단적인 처방이었다는 얘기다. 국내 정치를 외적과의 전쟁으로 여기는 게 가당한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적 행동양식이 판치는 사회는 결코 안전하지도, 안정적이지도 않다. 지속성도 떨어진다. 가짜뉴스의 홍수 현상을 그대로 둔다면 후대는 더욱 혼란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어쩌면 한국인은 가짜뉴스에 걸맞은 유전인자를 갖고 있는지 모른다. 법정에서 거짓말하는 위증이나 남을 거짓으로 고소·고발하는 무고 사건이 세계 최고라니까. 인구 비례를 감안할 때 위증죄는 이웃 일본의 857배, 무고죄는 1,085배라는 통계도 있다. 가짜뉴스를 이대로 놓아둔다면 거짓말하고 무고하는 더러운 유전인자를 키우는 꼴이다. 가짜뉴스의 생산자들 때문에 한국은 외신을 악의적으로 번역하거나 짜깁기하는 나라로 악명 높다. 외신들이 한국의 SNS에서 떠도는 자사발 보도를 공식 부인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나라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한국인은 거짓말쟁이라고 국제 공인을 자초하는 셈이니.

종교에서도 무고는 금기다. 십계명 제9조를 떠올려보자. ‘네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하지 말라.’ 세계적인 모범 포교국이라는 한국에서 유독 무고가 많고 가짜뉴스가 잘 먹히는 현상을 어찌 봐야 할까. 모래성처럼 약한 사회라면 도덕과 사회적 가치 기준의 재정립이 시급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백성은 곧 임금과 다름없다. 국민을 속이는 가짜뉴스는 ‘기군망상(欺君罔上)’에 해당한다. 동양 유교 사회에서는 임금을 속이는 기군망상을 대역죄에 버금가는 중죄로 다스렸다. 임금의 귀에 솔깃한 가짜 정보로 인해 나라의 근본이 흔들릴 위험이 크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가짜뉴스는 만악의 근원이다. 사회 통합을 막고 극단주의를 부추긴다. 가짜뉴스의 척결은 바른 사회를 향한 구체적 실천의 출발점이다. 정부는 언제까지 직무를 유기할 것인가.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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