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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트럼프의 면책특권

손철 뉴욕특파원





“도널드 트럼프에게 금기란 없는 것 같다.”

요즘 미국의 유력 정치인과 경제인·언론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소연하듯 하는 얘기인데 뜯어보면 재밌는 대목들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막말이나 예측불허의 기행은 그가 대선 후보인 시절부터 유명했는데 새삼스럽게 들추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지만 트럼프가 대통령 자격 이상의 면책특권을 누리는 데 대해 ‘미국 유권자들이 쉽게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 하소연의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특별검사의 표적에 올라 있지만 다른 미국 대통령 같았으면 이미 자진 사퇴나 탄핵 논의가 수도 없이 불거졌을 비리나 거짓말 의혹에도 끄덕하지 않고 있다. 그가 뒷돈을 주고 포르노 배우와의 성 스캔들을 입막음한 일이나 딸·사위를 백악관 고위직에 앉혀 국정을 주무르게 하는 점, 자신의 기업에 현직 대통령으로서 사실상 유·무형의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은 한국이라면 한 가지만으로도 당장 촛불이 들불로 번질 일이며 미국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치명적 스캔들이나 거짓말 의혹들은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가짜 뉴스’ 물타기나 국경 장벽 건설 등 이슈 전환 속에 금세 힘을 잃고 있다.

기업인이나 경제학자들도 경제학 원론조차 무시하고 보호무역주의와 무역전쟁을 일삼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더 이상 비판할 힘도 남아 있지 않다는 반응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10년 만에 해결하며 세계 경제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정조준해 “미쳤다”고 비난하는 것도 모자라 기준금리 조정 등 연준 고유의 통화정책까지 간섭하고 나섰지만 그의 폭주에 제동을 걸려는 움직임조차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누구보다 트럼프를 놓고 망연자실해하는 건 미국 언론계다. 트럼프의 도덕성이나 대통령으로서 자질과 인격에 미국민들의 기대가 별로 높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바닥을 뚫고 막장으로 가도 용납될 수 있는지 지면과 화면을 통해 회의감을 드러내는 기자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의 한 칼럼니스트는 지난해 미 정보기관들이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을 확인했다고 발표한 데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말을 믿는다”고 했을 때 눈과 귀를 의심했으며 논란이 거세지자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날 태연히 “미 정보기관을 믿는다”고 말을 바꾸면서 며칠 만에 워싱턴이 평온해진 것을 보고 자괴감이 들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미국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트럼프 대통령의 독특한 지위는 내정뿐 아니라 외교·안보에서도 거칠게 발휘되고 있다. 그는 70년 넘게 철통 같은 동맹관계를 맺어온 유럽이나 이웃 캐나다에도 자신의 정책과 어긋나거나 이익이 되지 않으면 내정간섭 수준의 비판을 일삼고 있다. 당선인 시절 37년의 외교적 금기를 깨고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직접 통화를 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선전포고만 하지 않았지 경제·안보를 막론하고 최대의 압박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 미국 대선 당시 중국 정부가 향후 상대하기 훨씬 까다로운 인물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꼽는 데 기여했던 외교관들이 대거 본국에 불려 들어갔다는 얘기는 뉴욕의 유엔본부 주변 외교가에서 나온 지 오래됐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대북 제재를 놓고 한미 균열 우려가 제기될 때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만큼 잘 대우해주는 나라가 있느냐”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손바닥 뒤집듯 정책과 입장을 바꿔온 선례들을 한국 정부가 잊어서는 안 된다. 북핵 문제나 방위비 분담, 주한미군 주둔 등을 놓고 중간선거 이후나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에 따라 말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더욱이 트럼프 특유의 면책특권은 그의 변덕에 무죄를 줄 가능성이 높아 모든 부담은 오롯이 우리 정부가 떠안을 위험이 높다. 트럼프 정부가 지금 무섭게 중국과 싸우고 있지만 언제 북한처럼 진객으로 모시며 돌변할지도 모를 일이어서 우리 기업들이 미국만 챙기고 중국을 홀대하는 일은 없는지 점검할 필요도 있다.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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