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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불변의 숫자로 재정의한 '단위'

이호성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사상누각’은 기반이 튼튼하지 못한 것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높이 짓는 건물일수록 바닥 공사를 더 튼튼하게 해야 한다. 바닥에서의 작은 흔들림이 위로 올라갈수록 증폭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에서도 이런 기반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단위’다. 단위란 잰 것을 나타내는 기준이다. 잰다는 것, 곧 측정은 기준과 비교해 얼마나 큰지 또는 작은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과학기술은 대부분 측정하고 그 값을 숫자로 나타낸다. 첨단 과학기술일수록 측정의 정밀도는 높아지고 측정값을 나타내는 숫자의 자릿수는 늘어난다.

진도 1 이하의 지진은 아주 경미해 예민한 사람만 느낄 수 있다. 이런 작은 지진도 지진계를 이용해 지속적으로 관측하고 언제 어디에서 발생했는지 파악해야 한다. 미세한 지진이 큰 지진의 전조현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밀측정을 연구하는 기관에서는 단위가 안정적인지, 혹시 변하지 않았는지 계속 관찰하고 연구해야 한다. 단위가 변하면 측정값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작은 불신은 큰 불신으로 이어지고 한번 잃은 신뢰는 회복하는 데 지진 피해를 복구하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릴 수 있다.

‘국제단위계’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법정 단위로 사용하는 단위들을 말한다. 킬로그램(㎏)과 미터(m)가 이 단위계에 속한다. 이 두 단위는 지난 1889년에 만들어졌다. 미터는 그 후 두 번에 걸쳐 과학적으로 재정의됐다. 1983년에는 오늘날과 같이 진공에서의 빛의 속력이라는 불변의 숫자를 이용해 재정의됐다. 과학자들은 변하지 않는 이 빛의 속력을 구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했고 1975년에서야 그 숫자를 확정했다. 이로부터 ‘미터는 빛이 진공에서 2억9,979만2,458분의1초 동안 진행한 경로의 길이’라고 재정의됐다.



이에 비해 킬로그램을 정의하는 ‘국제킬로그램원기’는 그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킬로그램은 유일하게 인공물로 존재하는 단위이다. 그래서 파손이나 손실의 위험이 항상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 130여년 동안 그 값이 변해왔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킬로그램을 대체할 방법을 연구해 20여년 만에 드디어 완성한 것이다.

16일 프랑스의 베르사유에서 개최된 국제도량형총회에서는 60개 회원국이 참석해 불변의 숫자 4개로부터 4개 단위를 재정의하는 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4개 단위란 질량의 단위 킬로그램(kg), 전류의 단위 암페어(A), 온도의 단위 켈빈(K), 물질의 양의 단위 몰(mol)이다.

이 단위들은 사용자 입장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도록 재정의됐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모든 측정기기는 그대로 사용하면 된다. 단 가장 정확한 1차 측정표준기를 연구하는 기관에서는 이 단위들을 구현하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이번 단위 재정의는 현재보다 미래를 위한 준비다. 변하지 않는 단위를 마련해 튼튼한 기초를 닦은 것이다. 이 기초 위에 첨단 과학기술은 꽃을 피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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