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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만에 이겼지만…日사죄도 못듣고 세상 떠난 강제징용 피해자들

김성주 할머니 "아무 말도 못하고 평생 살아" 눈시울 붉혀

피해자들 대부분 이미 고인 돼…유족 "정부가 한 풀어줘야"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관에서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연합뉴스


“아무 말도 못 한 채 평생을 살았습니다. 일본은 우리에게 사죄하고 배상해야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근로정신대에 끌려갔던 김성주(90) 할머니는 29일 우여곡절 끝에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한 대법원 선고 후 이렇게 말했다.

대법원은 이날 김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 4명과 유족 1명이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했다. 강제징용 피해자 6명이 같은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도 원고 승소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한·일 청구권협정이 있었더라도 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해 전범기업 측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에게는 1억∼1억5,000만 원씩,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는 각각 8,000만원씩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김 할머니는 대법원 선고 직후 서울변호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일본은 우리에게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할머니는 “일본 측은 데려가면서 ‘돌아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보내주겠다’고 해놓고 남동생이 죽었을 때도 집에 보내주지 않았다”면서 “지진 교육도 못 받아서 지진으로 같이 일하던 친구 6명이 죽기도 했다”며 아픈 기억을 회상했다.

고령인 데다 ‘조선여자정신대’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당해 지병을 앓고 있는 김 할머니는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할머니는 털모자와 털스웨터로 몸을 감싸고 있었지만, 일본 정부에 대해 발언할 때는 추위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수차례 몸을 떨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 할머니는 “일본에 갔다 왔다는 이유로 남편한테 ‘위안부’ 소리를 들으며 많이 맞았고, 자식들한테도 부끄러워 입을 다문 채 평생을 살았다”며 “고향에 가면 지금까지도 손가락질을 받는다”며 일본의 책임을 강조했다.



김 할머니는 양금덕(90)·이동련(88)·박해옥(88) 할머니 등과 함께 아시아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4년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에 동원돼 임금 한 푼 받지 못하고 강제노역을 했다. 이들은 일본에서 1999년부터 10년 가까이 법정 다툼을 벌였지만 패소했다가, 2012년 한국 법원에 다시 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2심이 이뤄진 2015년부터 올해까지 결론을 미뤘고, ‘재판 거래’ 의혹이 불거지고 나서야 전원합의체 심리를 시작해 이날 판결 선고를 내렸다.

2000년 5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처음 소송을 제기했다가, 무려 18년 7개월 만에 승소 판결을 받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한 명도 참석하지 못했다. 원고인 정창희(1923년생), 이병목(1923년생), 정상화(1923년생), 박창환(1923년생), 이근목(1926년생) 할아버지 등 강제징용 피해자 5명이 모두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소 제기 당시 함께 원고에 이름을 올렸던 김돈영(1923년생) 할아버지의 유족은 항소를 포기해, 현재 원고는 5명이다.

기자회견에는 이병목 할아버지의 아들 이규매 씨, 이근목 할아버지의 아들 이길훈 씨, 박창환 할아버지의 아들 박재훈 씨 등이 참석해 선친을 대신해 발언했다. 박재훈 씨는 “부친께서 이미 10여년 전 결말을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래서 오늘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슬프다”면서 “한국 정부가 미쓰비시중공업의 배상을 함께 추진해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한을 풀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소송대리인단의 이상갑 변호사는 “오늘 대법원판결을 한마디로 평가하면 ‘만시지탄(때늦은 한탄)’”이라면서 “당사자분들이 모두 돌아가셨는데, 대법원이 이 부분에 대해 주문과 별도로 입장을 밝혔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비판했다. 이 변호사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배상을 받아낼 방법에 관해서는 “우선은 협의해서 포괄적으로 화해하는 방식이 됐으면 한다”면서 “여의치 않으면 강제집행에 대비해, 미쓰비시가 한국에 어떤 재산 있는지 제보를 받고 있으며, 제3국에서 강제집행 절차에 착수할 경우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이제는 최소한 피해자들이 직접 20년 30년 맨손으로 쫓아다니는 상황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면서 “애초에 위정자들이 나라 운영을 잘못한 탓에 나라를 빼앗겨 벌어진 일이다. 이제는 국가가, 외교부가 나설 때”라고 강조했다.
/홍나라인턴기자 kathy948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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