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목 시세보기

서울경제

HOME  >  오피니언  >  사내칼럼

[특파원칼럼] 미국은 '트럼프'보다 크다

  • 손철 기자
  • 2018-11-29 18:19:06
  • 사내칼럼
[특파원칼럼] 미국은 '트럼프'보다 크다

“술고래들과 바보들, 그리고 미국을 보살피는 특별한 섭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19세기 독일 통일을 이끌었던 프로이센의 철혈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말이다. 프랑스·오스트리아 등 주변 강대국을 어렵게 제압하며 통일 대업을 이룬 비스마르크로서는 미국이 드넓은 국토와 풍부한 자원을 앞세워 독립 100년도 안 돼 강대국 반열에 오른 것이 부럽기도 하고 씁쓸한 마음도 있었던 듯싶다.

미국의 최고 사령관이 좌충우돌하고 일방 독주에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있는 지금도 비스마르크의 말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다만 신의 섭리나 우연으로만 미국의 건재함을 설명하기에는 미국을 굳건히 떠받치고 있는 시스템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인종 차별과 여성 비하 등 막말을 일삼으며 돈만 밝히는 도널드 트럼프가 2년 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는 믿기지 않는 현실을 직접 마주하며 한동안 너무 고단했다. ‘미국의 민주주의도 별것 없구나’ 생각하며 국정농단을 방치한 대통령을 심판하는 촛불 민심과 이를 착실히 헌법적 조치로 이행해 가는 한국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은 역시 간단하지 않은 나라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경제 규모 20조달러의 세계 최강국이 4%대 성장을 하고 사실상 완전 고용을 달성하며 호조세를 달렸지만 미국민은 트럼프의 폭정에 단호히 옐로카드를 집어들었다. 트럼프 견제론이 미 전역을 휩쓸면서 지난 6일 중간선거에서 입법부의 권력지도가 뒤집어졌고 야당인 민주당은 하원 다수당을 8년 만에 탈환했다. 공화당이 상원에서는 2석을 늘려 트럼프는 ‘승리’라고 자축했지만 플로리다·텍사스·조지아주 등 공화당이 텃밭에서조차 진땀을 흘리며 신승을 거둔 이면과 상원 선거 구조를 뜯어보면 ‘트럼프 심판’에 대한 미국의 민심은 한층 도드라진다.

세계 최고 권력자의 일탈 가능성에 제동을 거는 것은 의회도 마찬가지다. 이뿐만 아니다. 보수 성향의 법관이 늘어나도 대통령의 위법적 통치 논란이 일면 미 사법부는 좌시하지 않았다. 트럼프가 일방적인 무슬림 입국 금지 명령을 내리거나 무고한 젊은이들을 추방하려 할 때 법원은 단호히 제동을 걸었다. 트럼프가 법원 판결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할 때는 공화당 성향인 대법원장조차 대통령의 발언을 신랄하게 반박하며 사법부의 권위를 지켜냈다.

백악관과 행정부 고위 관리들 역시 대통령의 능력 부족이나 판단 착오로 국정이 위기에 빠지는 것을 온몸을 던져 막고 있다. 9월 행정부 고위당국자가 뉴욕타임스(NYT) 기고를 통해 “충동적인 트럼프의 리더십으로 최악의 상황이 생기는 것을 막으려 노력 중”이라고 고백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실제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나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경질 위협이 상시적으로 닥쳐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며 트럼프에 ‘노(no)’라고 말하는 것을 서슴지 않고 있다. 사람이 아닌 국가에 충성하는 공무원들이 책임감 있게 일할 수 있게 하는 미국의 시스템이 자칫 발생할 수 있는 대통령 탄핵 같은 초유의 사태를 방지하는지도 모른다.

잘 나가는 미국 경제나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교육·과학도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이례적으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비난을 퍼부어도 연준 수뇌부는 흔들림 없이 통화정책을 시행해 시장의 신뢰를 유지하고 트럼프가 연구개발 예산을 뭉텅이로 깎아도 역대 최대의 기부금이 대학에 쏟아진다. 이는 올해도 계속된 노벨상 최다 수상의 밑거름이 되고 화성 착륙 및 탐사의 신기원을 이뤄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의 시스템에 다시 한 번 기대를 걸면서 세계 경제와 안보에 각각 최대 위협으로 자리한 미중 무역전쟁과 북핵 문제에 희망을 쏘고 싶다. 이번주 말 중국이 한발 물러서며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줄 것으로 예상하는 것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 애쓰고 있는 중국이야말로 미국의 무서운 힘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도 트럼프에게 잠시 잘 보이려 애쓰기보다는 실제 미국을 움직이는 시스템을 촘촘히 이해하면서 한미 동맹을 진정성 있게 강화해야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협력에 탄탄대로를 구축할 수 있다. /runiron@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XC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이메일 보내기

보내는 사람

수신 메일 주소

※ 여러명에게 보낼 경우 ‘,’로 구분하세요

메일 제목

전송 취소

메일이 정상적으로 발송되었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