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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샹젤리제





10여년 전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낮에 에펠탑에 올랐다가 해 질 녘에 샹젤리제 거리를 거닐며 느꼈던 여유로움은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잠시 들렀던 샹젤리제 거리 노천카페에서의 휴식은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샹젤리제를 경험했던 여행객 모두 이런 기분에 동의할 것으로 믿는다. 그만큼 샹젤리제는 파리의 낭만과 역사를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손색이 없지 싶다.

이렇듯 파리지앵은 물론 전 세계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 샹젤리제 거리지만 17세기 초까지만 해도 이곳은 농지였다. 1616년 앙리 4세의 부인인 마리 드 메디치 왕비가 센강을 따라 산책로를 조성한 것이 샹젤리제 거리의 시작이다. 나폴레옹 3세 때인 19세기 후반 파리 부호들과 정치인·예술가의 저택이 들어서고 그들만을 위한 레스토랑과 고급가게·화랑들이 몰려들면서 번화가가 됐다.

샹젤리제 거리는 센강의 오른쪽 언덕을 따라 전개된 콩코르드 광장에서 북서쪽으로 개선문까지 길게 뻗은 약 1,880m의 직선도로로 거리 양쪽에는 플라타너스·마로니에 등의 가로수가 울창하다. 개선문 쪽은 명품점을 비롯한 화려한 가게들과 의상실 등이 샹젤리제와 이어진 몽테뉴 거리까지 즐비하다. 샹젤리제는 ‘낙원의 들판’이라는 뜻으로 들판이라는 ‘샹(Champ)’과 낙원의 의미를 지닌 ‘엘리제(Elysees)’를 붙여 지었다고 한다. 엘리제는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들이 죽어서 간다는 낙원을 가리킨다. 나폴레옹이나 ‘노트르담 드 파리’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 같은 영웅들이 사후 샹젤리제 거리의 관문인 개선문을 지나갔던 이유가 다 있었다.



요즘 프랑스인들에게 샹젤리제는 축구 경기나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몰려드는 장소로 1840년 나폴레옹 유해가 이 거리를 지나간 후에는 ‘승리의 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라는 샹젤리제가 최근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유류세 인상에 반발한 ‘노란 조끼’ 시위가 폭력적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샹젤리제 거리가 뜯어낸 보도블록과 부서진 집기류로 가득하다는 소식이다.

1일(현지시간)에도 3,000여명의 시위대가 바리케이드를 치고 보도블록을 뜯어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고 한다. 프랑스 정부는 비상사태 선포까지 검토하며 물러나지 않을 모양이다. 전쟁터를 방불하게 하는 샹젤리제가 낭만의 거리로 돌아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안타깝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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