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임기 60개월 중 3분의1이 지나면서 청와대 안팎에서는 짙은 불안감이 감지된다고 한다. 지지율 50%마저 붕괴한 뒤 분위기 반전을 꾀하지 못하면 추락은 끝이 없을 것이라는, 정치공학에 능한 본능적 두려움이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12일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야심 차게 내놓았던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의 부작용이 이렇게 클지는 솔직히 몰랐다는 탄식이 청와대 내에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을 두고 1년여를 싸우면서 시간을 허비한 듯싶어 아쉬워한다는 것이다. 특히 숨은 지지층의 비판은 뼈아팠다. 이준구 서울대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나 근로시간 제한 같은 조치에 대해 시장이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할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 자체가 실책이었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역시 변화에 대한 준비를 해왔다. 2개의 반전 카드도 꺼냈다. 먼저 사람의 교체. ‘김&장’을 경질하고 경제 투톱으로 ‘홍남기·김수현’을 내세웠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대통령은 담론 논란에 매몰되고 싶어 하지 않는데 김&장이 다투면서 소득주도 성장을 둘러싼 논란만 더 확대됐다”면서 “최저임금이 자영업자에게 타격을 줬으면 대책을 만들어 불을 꺼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정책전환이 두 번째. 지난 5일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은 장관 보좌관들을 불렀다고 한다. 김 실장은 “대통령 임기 60개월을 놓고 보면 20개월 주기로 정책의 틀을 바꿔야 한다”면서 “두 번째 정책주기의 큰 줄기를 잡을 때”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책전환으로 현재의 답보상태를 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11일 “최저임금 인상이 지금 같은 속도로 나갈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조정을 충분히 해야 하는 것인지, 원인을 정확하게 알았으면 좋겠다”면서 속도 조절을 시사했다.★관련기사 3면, 본지 12월12일자 1·4면 참조
이후 부처의 움직임은 더 구체적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최저임금 인상이나 주52시간 근로 등 시장의 기대와 달랐던 정책은 시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속도 조절이 필요하면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52시간 근로 단축에 따른 처벌 유예 문제도 다시 논의한다.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도 브리핑에서 “(노동시간 단축) 계도기간 연장과 관련해서는 좀 더 상황을 봐야 할 것 같다”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논의 결과를 토대로) 연내에는 입장을 정리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계도기간 연장과 관련해서는 정부의 첫 발언이다.
다만 정책전환이 최저임금이나 근로시간의 계도 연장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 교수는 “위기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고 이에 알맞은 대응방안을 찾아내야만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평범한 진리”라면서 “조선업·철강업·자동차산업마저 어려워진 상황에서 반도체·휴대폰 등 다른 산업기반까지 무너지고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이 추격하는 상황이 위기의 본질”이라고 진단했다. 투자 부진, 구조조정 부진, 규제 철폐 등 우리가 안고 있는 병폐의 뿌리는 길고 깊은데 시늉만 내는 경제정책 전환은 결국 한국 경제를 또 다른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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