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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룡리 전원일기 <13> '리세'를 아시나요

마을 발전기금·주민세 같은 '리세'

"어떻게 할까요" 긴급반상회서 논의

찜찜하지만 '더불어 사는' 지혜 발휘

낼건 내고 당당히 마을자치 참여하기로





긴급반상회의 발단은 이랬다. 양평군 용문면 마룡리라는 마을에 정착한지 어 엿 3년이 지났다. 외지에서 20가구 정도 들어와 터를 잡고 살다보니 불편한 것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도 반장을 뽑아 민원 처리 등 수고스러움을 떠맡겼다. 그런데 어느 날 반장이 가로등 설치 건으로 면사무소를 찾았는데, 데 뜸 직원이 이장한테 먼저 가보라는 것이다. 반장은 황당해했다. 민원사항이 있으면 해당 주민센터를 찾아 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도시에 살 땐 불편사항이 있으면 주민센터를 찾지 동장한테 가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이곳에선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라’는 법칙(관행에 더 가까워 보이지만)이 적용된 듯하다. 일단 현실을 인정한 반장은 이장을 찾아갔다. 현장에 같이 있지 않아 전해들은 상황만 요약한다. 반장을 만난 이장은 ‘발전기금’ 얘기를 꺼냈다. 가구당 50만원씩. 반장이 너무 많지 않으냐고 했더니 조금 낮춰 줄 수 있다는 ‘아량’을 베풀었다. 그리고 ‘리세’라는 게 있는데 연 3만 원 정도 된다고 했다. 리세? 마룡‘리’ 할 때 그 ‘리’? 우리는 지방세인 주민세를 내고 있는데 마룡리에서 살고 있으니 ‘리세’를 내라는 말인가? 반장은 이 복잡한 문제를 풀기 위해 긴급반상회를 열었던 것이다.

마을 뒷산에 올라 바라본 양평군 용문면 마룡리. 마냥 조용할 것만 같은 이곳도 사람들이 모이니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는 모양이다.




사실 발전기금이라는 걸 이전부터 들어왔지만 ‘리세’는 정말 황당했다. 기존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들어와 주택을 지으면 주민들이 불편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죄송스러운 마음에, 앞으로 불편한 관계를 만들지 않기 위해 100만~200만 원 정도를 발전기금 명목으로 낸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처럼 원주민들이 살고 있지 않던 곳에 집을 짓고 살 땐 상황이 좀 다르다. 원주민 마을 도로를 사용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발전기금이란 게 이장이 내라면 꼭 내야하는 것도 아닐 게다. 다른 마을 얘기를 들어봐도 낸 사람도 있지만 안 낸 이들도 적지 않다. 단지 관행적으로 그래왔던 것이다. 냉정하게 접근하면 차라리 발전기금 낼 돈으로 우리 동네 필요한 데 쓰면 그만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볼게 있다. 도시의 삶을 버리고 이곳에 오게 된 ‘마음’ 말이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연 속 풍경만 만끽하러 왔을까? 더불어 사는 소박한 꿈도 함께 갖고 왔을 것이다. ‘리세’란 걸 안 내 어르신들이 마을회관도 못 가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씁쓸함이 들었다. 이게 아닌 데... 도시 못지않게 시골도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 가는 걸까? 싫어도 현실을 인정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반상회 끝에 발전기금은 적절한 금액을 정해 모아서 내고 받아들이기 싫지만 ‘리세’도 내기로 했다.

하지만 누군가 그랬다. 우리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런 불공정한 일을 올리자고. 공무원은 왜 주민 민원을 잘 들어주지 않고 다짜고짜 이장한테 찾아가보라 하는가. 이장을 먼저 거쳐야만 한다는 행정지침이라도 있는지 따져보자고 말이다. ‘작은 민주주의’ 시스템이 이곳에서는 잘 돌아가지 않아서다. ‘생활의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이장과 면사무소의 태도에 깜짝 놀랐지만, 이 문제를 적극 따지고 나서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마을에 분란이 되는 일을 우리 손으로 만들지 말자는 게 중론이다. 김장담그기, 체육대회, 동네 청소 등 이곳 시골살이엔 함께 할 일이 제법 많다. ‘마을 자치’가 잘 되고 있는 곳도 있다. 찜찜함은 남지만 ‘리세’를 내고 당당하게 마을 행사에 참여해 좀 더 많은 주민들과 대화하며 삶의 균형을 맞추어 가야겠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최남호기자 yotta7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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