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안정보다 쇄신을 선택했다. 대규모 사장단 교체를 단행함으로써 조직에 충격을 주고 일신하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재계의 한 고위 임원은 “새로운 롯데를 만들기 위해 신 회장이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경영진의 세대교체를 통해 공격적인 시장 확장 전략을 펼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다른 관계자도 “롯데가 지난 10월 향후 5년간 50조원을 투자하고 7만명을 고용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번 인사를 바탕으로 그런 경영 청사진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김교현 롯데케미칼 대표의 화학 사업 총괄 비즈니스유닛(BU)장의 내정이다. 김 대표는 지난 7일 인도네시아의 롯데케미칼 유화단지 기공식에 참석해 신 회장과 함께 롯데그룹의 화학 부문 사업 전반을 점검하는 등 최근 부쩍 존재감이 높아졌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2조9,297억원을 벌어들이며 롯데그룹 영업이익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등 10월 롯데지주(004990) 산하에 편입된 후 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지난해 기준 롯데그룹의 비금융 부문 그룹사 중 화학 업종의 매출은 전체의 24.7%를 차지했으며 세전·이자지급전이익(EBITDA) 비중은 55.5%에 달한다. 특히 화학 업종의 영업이익 비중은 소매유통(21.9%), 식음료(8.0%), 호텔·레저(7.8%)를 압도한다. 롯데케미칼은 또 내년 초 미국 루이지애나에 약 3조원을 들여 대규모 에틸렌 생산공장을 완공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를 지속할 계획이다.
롯데케미칼이 풀어야 할 숙제는 많다. 우선 화학 산업 공급 과잉론이다. 내년부터는 미국의 에탄크래커(ECC) 업체와 나프타분해시설(NCC)을 갖춘 중국 업체들이 화학제품을 쏟아낼 예정이다. 미중 간의 무역갈등에 따라 화학제품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교현 대표는 10월 열린 ‘화학산업의 날’ 행사에서 기자와 만나 “지난 몇 년간 석유화학 업종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향후 실적이 우려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영호 신임 식품 BU장이 선임된 식품 부문은 공격적 투자가 예상된다. 롯데는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식품 부문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공격적 인수합병(M&A)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실제 지난해 인도 아이스크림 업체인 하브모어를 인수한 데 이어 10월에는 미얀마 제빵업체 메이슨을 인수했다. 롯데가 식품 부문에 향후 5년간 5조원을 투자하기로 한 만큼 이 신임 BU장이 공격적인 투자에 선봉에 설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경영 실적이 좋지 않은 유통 부문에도 대거 변화를 줬다. 장선욱 대표를 대신해 이갑 대홍기획 대표가 롯데면세점을 이끌게 됐다. 롯데면세점은 최근 몇 년간 영업이익이 3,000억원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영업이익이 25억원으로 급감했다.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에 나서며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감소한 탓이다. 무엇보다 일본 롯데가 최대 주주인 호텔롯데 상장 작업을 위해서라도 롯데면세점의 실적은 중요하다. 롯데면세점이 호텔롯데의 주력사업인 탓이다. 현재 자본시장과 롯데면세점의 실적을 감안하면 호텔롯데 상장은 향후 3년 뒤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외에도 김종인 롯데마트 대표가 이번 인사에서 롯데자이언츠 대표로 자리를 옮기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임 롯데마트 대표로는 문영표 롯데글로벌로지스 대표가 선임됐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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