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초부터 위기를 언급하는 마음이 무겁지만 갈수록 악화일로를 걷는 한일관계의 양상을 보면서 이처럼 위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의 레이더 조준 논란이라고 생각된다. 위안부 합의 문제나 징용자 문제 판결 등에 대한 처리와 관련해서는 갈등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는 역사 경험 및 세계관의 상이함이나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 차이가 생각보다 커 결코 쉽지 않고 따라서 많은 시간과 지혜, 그리고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레이더 조준 논란은 예전이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고 서로 양보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수 있었던 사안이 갈등적 관계에서 조정되지 못한 채 격화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갈등 속 소통 부재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된다. 한국 외교의 위기까지 언급하는 것은 북한이나 중국과의 관계가 여전히 불확실한 가운데 일본과의 관계를 어렵고 불확실하게 만들어 어떻게 할 것인지 하는 우려 때문인데 갈등이 이렇게까지 확대된 배경에는 우리나라가 전후의 일본, 특히 냉전 후의 일본에 대해 가진 몇 가지 오해 및 편견이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전후의 일본을 여전히 전전(戰前)의 군국주의적 일본과 분리해 생각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오해다. 물론 우리에게도 이유는 있다. 일본은 이제까지 수차례의 반성 표명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부정하는 ‘망언’ 또한 이어져 우리로 하여금 그 진실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냉전이 종식된 후에는 국제 공헌의 명목이지만 군사력 증강을 동반하는 해외 전개 능력을 점차 증대시켜 그 진실성 의혹을 더욱 증폭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일본을 과거와 겹쳐 보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이는 냉전기에 평화주의 국가로 변화를 추구한 전후 일본의 모습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냉전 후 일본이 왜 군사력 증강을 동반하는 보통국가화·정치대국화를 추구하는지와 탈냉전기의 혼란 속에서 어떻게 외교안보적 대응을 수립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강력한 서구제국주의의 동침에 대해 근대 일본의 설계자들은 국가 간의 관계란 기본적으로 힘을 바탕으로 하며 따라서 무질서한 것이고 부국강병 및 서구 문명화만이 대응의 길이라는 현실주의적 감각을 습득하고 승계했다. 냉전이 종식된 후 일본 외교청서가 미소간의 열전이라는 우려는 사라졌지만 더 많은 크고 작은 갈등 및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현실주의적 국제관계관과 전후 일본의 변화를 포함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가 우리로서는 불편하게 느껴지는 문구임에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반일’의 경계를 제시하며 우리의 입장을 ‘편향’으로 굳히게 만들 위험성을 시사해준다.
둘째, 한국의 ‘타당한’ 주장은 ‘온당한’ 일본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일방적 생각이다. 이는 마치 역사 인식 문제 등을 둘러싼 한일 간의 갈등이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아베 총리를 위시한 자민당이라는 보수세력에 의해서만 야기되는 것처럼 인식해 정권이 바뀌면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견해와 같다. 하지만 현재 한일 양국의 갈등 내지는 한국의 주장에 대한 일본의 입장은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일본에도 입헌민주당 같은 리버럴(자유주의) 세력이 있지만 지난 세 차례의 국정선거에서 보았듯이 중국이나 북한에 대한 위협 인식은 정파를 가리지 않고 실제적인 것이고 수렴된 것이며 그러한 가운데 자민당이라는 보수정당이 대승을 거뒀다. 또 일본의 주요 신문들이 성향과 상관없이 위안부 합의의 실질적 파기나 징용자 소송 판결과 관련해 국제협약 불이행이라는 차원에서 한국을 비판했다.
이처럼 19세기 중반 이후 일본이 추구한 서구화 및 근대화는 정의의 실현보다 국익을 위한 현실주의적 접근에서 합의된 것으로 한국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를 과대하게 부풀리는 것은 한국의 국익에도 맞지 않고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실사구시가 기본인 현 정부의 대일 ‘투 트랙’ 정책이 차이를 인정하되 소통으로 타협이 가능하게 만드는 실사구시책으로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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