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의 회피로 한일관계는 일말의 개선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게 됐다. 가뜩이나 양국 국방장관이 초계기 조종사 복장으로 강력대응을 선언하고 예정된 군사교류까지 취소하며 극한대치로 가는 상황에서 일본 총리까지 나서 기름을 부었다면 돌이킬 수 없는 형국으로 흘렀을 터다. 비록 한국과의 관계복원 의지를 표명하지는 않았지만 양국 모두 최악은 피하고 해법을 찾을 시간을 번 셈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아베 정부는 초계기와 강제징용 배상 판결 갈등으로 일본 내 정치적인 면에서 이익을 챙겼다. 통계부정 의혹 등 자국 내 문제가 있음에도 내각 지지율이 53%로 급등한 것은 한일 대립이 격화하면서 여론 결집 효과가 나타난 덕이다. 4월과 7월 지방선거와 참의원선거를 앞둔 아베 정부가 이런 기회를 활용하려 들 수 있다. 아베의 의도적 ‘한국 패싱’이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라면 한일관계는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자칫 8월 만료되는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의 연장은 물론 경제·문화를 포함한 전 분야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한일관계를 감정싸움으로 몰고 가는 것은 대중 정서에 부합할지 몰라도 실질적 도움은 되지 못한다. 북한 비핵화를 비롯한 동북아 안보 문제에 공동 대응하고 경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양국관계가 파탄으로 치닫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우리 정부가 좀 더 냉철해져야 하는 이유다. 일본의 도발에 일일이 반응하기보다 넓고 긴 안목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은 차선이 안 되면 ‘차악’이라도 고민하는 외교의 묘를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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