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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기자의 차이나페이지] <2> 춘제의 정치사회학…“당 주도의 중화부흥을 믿게 하라”

지난 1월 30일 상하이 기차역에서 춘제를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농민공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고려시대 승려인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내용이다. 신라 진평왕의 딸 김덕만이 27대 국왕인 선덕여왕(재위 632~647)으로 등극했다. 그러자 당시 당 태종이 즉위를 축하한다며 붉은색·자주색·흰색의 3가지 색으로 그린 모란꽃 그림과 모란 꽃씨를 보냈다고 한다. 선덕여왕은 모란꽃 그림을 보고 “이 꽃은 틀림없이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하들이 ‘어떻게 그림만 보고 향기가 없는지는 알 수 있나’고 물었을 테다. 여왕은 “꽃 그림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벌과 나비가 없으니 그것은 향기가 없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는 나에게 남편이 없다고 당 임금이 놀리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신하들이 그림과 함께 가져온 씨앗을 왕궁 뜰에 심었는데 정말 여왕의 말대로 향기가 전혀 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예로부터 선덕여왕의 현명함과 신라의 자주성을 일컫는 사례로 제시돼 왔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한가지. 고구려를 침공했다가 번번히 패하기만 한 당 태종 이세민이 실제 신라에 대해서 이런 고차원의 농담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했을까. 기자가 만난 국내의 한 중국사 전공 교수는 다르게 해석했다. 그는 “우리도 그렇지만 중국은 어떤 대상을 높고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강한데 특히 모란꽃은 중국인에게 ‘부귀’를 상징한다”며 “역사상 이런 모란의 이미지가 극대화한 것은 당나라 시기부터로, 지금도 중국인들은 모란을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즉 당 태종은 보통 중국인들의 느낌대로 ‘잘 먹고 잘 살아라’라는 의미에서 모란꽃 그림을 이웃 나라 군주에게 보냈는데 중국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선덕여왕이 지레짐작 확대 해석했다는 설명도 가능한 셈이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명절 ‘설날’도 한국과 중국에서 바라보는 입장이 다르다. 중국에서는 설을 춘제(春節·춘절)이라고 부른다. 음력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첫 날’로서 전통시대부터 내려온 명절이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바라보는 관점이 크게 바뀌었다. 기본적으로 중국의 변화폭이 크다.

지난 1월 30일 춘제를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국인들로 저장성 항저우 기차역이 가득 차 있다. 항저우나 선전 같은 산업도시에서는 춘제기간에 이동이 특히 많다. /로이터연합뉴스


한국에서 중국 춘제를 인식하는 것은 대개 이 기간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인 유커(游客)의 숫자 변화에서다. 중국의 일방적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이 있기 전인 2016년 춘제 연휴 일주일간 한국을 찾은 방한 관광객이 16만명에 달했다. 이들은 국내 면세점에서 물건을 사고 관광지를 돌아봤다. 최근 사드보복이 얼마간 해소되면서 이들 유커를 다시 유치하는 것이 한국 관광·유통업계에서 최대 관심사가 됐다.

이외 중국 춘제에 대해서 단편적으로 알려진 것은 고향을 가기 위해 기차역에 몰리는 엄청난 인파와 함께 시끄럽고 또 미세먼지를 유발하며 밤새도록 계속되는 폭죽 놀이 정도가 될 것이다. 연휴라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중국내 관광지에서의 무지막지한 인파도 종종 한국 언론을 장식한다.

춘제를 전통적인 면에서 한번 보자. 설을 지내고 가족들이 모이기 위해 ‘민족대이동’을 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중국이 비슷하다. 차이점은 설날 당일에 차례 등 모든 행사가 집중하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설 전날 저녁에 쏠린다는 것이다. 중국인은 차례를 지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월 25일 안휘성 허페이의 한 갤러리에 전시된 춘제 음식 ‘녠예판’을 방문객들이 살펴보고 있다. 춘제 전날 저녁 가족들이 모여 앉아 이런 음식을 먹으며 ‘신년’를 맞는다. /신화연합뉴스


중국에서 춘제 관련 행사는 춘제 전날, 즉 음력 12월30일(제석·際夕 이라고 한다) 밤에 집중된다. 중국인들은 ‘녠예판(年夜飯)’이라고 해서 설 전날 저녁을 풍성하게 차려 설이 되는 자정이 넘어서까지 먹고 마시기를 계속한다.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것은 이 자리에서다. 아이들에게 세뱃돈 격인 ‘홍바오(紅包)’를 주기도 한다. 광란적인 폭죽놀이가 펼쳐지는 것도 제석에서 설날로 이어지는 밤이다. 전국 각지에서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관련 기관 차원에서 다양한 전통행사가 열리는 것도 빼놓을 수는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포함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들도 각각 지방현장 순시에 나서 민심을 듣는다.

또 차이라면 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명절의 기간이다. 지나치게 면적이 넓은 나라다 보니 이동시간도 오래 걸리고 이에 따라 연휴도 길다. 1주일 이상 쉬는 경우가 보통이다. 기자가 중국인 지인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 이번 주초에 연락을 했는데 그는 “지금 고향에 와 있어 나중에 이야기하자”는 대답이 들었다. 중국 당국은 일찌감치 지난 1월 21일부터 무려 40일 동안을 춘제 특별수송기간인 ‘춘윈(春運)’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자처럼 베이징 등 대도시에 남아 있는 사람에게는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식당 같은 상점들이 일제히 문을 닫고 관광서나 기업과 연락할 수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세계 최악의 교통체증이 사라지고 미세먼지도 약해진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만난 한국 기업가들의 전언은 더 현실적이다. 중국에서 업무 연도는 사실상 춘제 이후에 시작된다. 춘제 전후로 열흘 내외를 쉬고 직원들이 모두 돌아오는 시기에 맞춰 2019년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의미다. 1월부터 2월까지는 ‘붕’ 떠 있는 느낌인 셈이다. 춘제를 지내러 고향에 내려간 생산직 직원들이 복귀를 안 하는 경우도 많아 인사이동과 직원재배치가 이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최근 베이징현대차가 춘제를 맞아 중국내 산재한 5곳 공장을 대상으로 인력재배치를 했는데 이것이 중국 일부 언론에서 ‘소프트감원’이라고 오해받기도 했다. 베이징현대차 관계자는 “늘상 춘제 전후로 인력이동이 있다”고 전했다.



지난 1월 26일 저장성 위야오 마을에서 춘제 행사로 용춤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최근 춘제의 의미가 중국에서는 달라지고 있다. 춘제가 국가의 정치적 목적에 활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이 40일 간의 ‘춘윈’를 진행하고 있는 것과 함께 중국 국영 중앙방송국(CCTV)은 매일 춘제에 대한 특집 방송 중이다. 아무리 국영방송이지만 춘제 특집은 유별나다.

춘제 관련 방송을 하면서 CCTV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덩(等··기다리다)’와 ‘따오(到·이르다)’다. 합치면 ‘돌아옴을 기다린다’는 말이다. 방송에서는 도시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딸들이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가는 것, 부모님이 간절하게 기다리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 대개 부모들은 자식을 기다리며 음식을 준비 중이다. 모여서 녠예판을 먹는 장면도 계속된다.

중국이 이른바 ‘사회주의화’ 되면서 많은 중국적 전통이 파괴됐다. 명절에 의미를 부여한 것도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 당국은 ‘춘제’를 대표적인 전통명절로 삼아 공산당 주도의 중화부흥 성공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쓰고 있는 셈이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사회주의 색채가 옅어지고 중국적 색채가 강화되면서 춘제가 다시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월 27일 상둥성 칭다오의 춘제 장식품 판매 시장이 붐비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단오나 청명도 있지만 역시 동아시아 전통 명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설날(중국은 춘제)과 추석(중국은 중추제·中秋節)이다. 이 가운데 중국에서 중추제의 위치는 애매하다. 음력 8월15일인 추석은 보통 양력으로 9월에서 10월에 걸치게 되는데 이것은 중국에서 10월1일 ‘건국절’과 겹친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한 날이 건국절인데 보통 일주일 정도 연휴가 주어진다. 중추제 연휴를 길게 할 경우 건국절과 잇따르게 쉬게 되기 때문이 보통 중국에서 중추제는 간단히 넘어간다. 현대가 전통을 이긴 사례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나 중국인들이 하나 남은 춘제를 중요하게 여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적 특색의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중국에서는 매년 3월 ‘양회’라는 정치행사가 열린다. 이는 우리의 국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함께 공산당 및 기타 정당 간의 회의인 전국정치협상회의(정협)를 말함이다. 양회는 중국 정치에서 최대 행사다. 물론 전인대나 정협은 공산당이 결정한 사항을 사후 추인하는 요식행위라는 의견이 주요하긴 하지만 어쨌든 중요하기는 하다.

우리도 설날 민심이라고 해서 설 연휴에 지역에서 오가는 여론이 이후 정치논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중국도 이는 마찬가지다. 춘제 기간에 어떻게 바닥 민심이 돌아가느냐에 따라 양회에서의 분위기도 달라진다. 중국 당국이 춘제에 대해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월1일 베이징 첸먼지역 후퉁의 한 가족을 방문해 환담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해 전인대에서 국가주석의 임기제한을 없앤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등 공산당의 권한이 강화될 수록 양회에 앞선 춘제 연휴의 의미를 더욱 키우는 셈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CCTV에서 올해 지겹도록 반복하는 ‘덩따오(等到)’도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부모’인 공산당으로 ‘라오바이싱(老百姓·중국 인민)’이 돌아오라는 추론이다. 중국의 지상목표인 경제성장에 지장을 줄 정도로 매년 1~2월을 애매하게 보내는 것도 결국 정치가 경제를 이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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