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에서 호른은 일종의 중재자이자 매개자라고 할 수 있어요. 부드러운 곡을 연주할 때는 목관 악기와도 잘 어울리고, 반대로 강렬하고 웅장한 곡이 무대에 오를 때는 금관 악기와도 썩 훌륭한 호흡을 자랑하죠.”
세계 최고의 악단인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 호른 연주자인 슈테판 도어(54·사진)는 내한 공연을 앞둔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의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낭만적인 시인처럼 로맨틱한 호른이 중재하는 자리에는 모든 소리를 넘어서는 깊고 심오한 공존의 공간이 펼쳐진다”며 이같이 말했다.
1993년부터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호른 수석으로 활약하고 있는 도어는 전 세계에서 이 악기를 가장 잘 다루는 연주자로 평가받는다. 6세 때 음악을 시작한 그는 처음에는 비올라와 호른 연주를 병행하다가 15세 이후 온전히 호른으로 전향했다. “어린 시절 두 명의 친형이 각각 바이올린과 첼로를 먼저 배우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비올라를 배우면 함께 현악 삼중주를 연주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열 살 때 한 크리스마스 콘서트에서 우연히 호른 연주를 듣게 됐어요. 그때 그 소리에 완전히 매료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2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한 차례 공연을 연 도어는 오는 28일 예술의전당에서 서울시향과 협연해 베네수엘라의 출신인 크리스티안 바스케스의 지휘 아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호른 협주곡 2번을 선보인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 슈트라우스의 아버지가 뛰어난 호른 연주자였어요. 어릴 적부터 호른 소리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인지 이 곡을 연주하다 보면 작곡가가 호른이라는 악기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높다는 사실을 저절로 알게 됩니다. 연주하기 까다롭고 매우 어렵고 도전적인 곡이기는 하지만 관객들 입장에서는 호른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이번이 벌써 8번째 내한인데 언제나 열정적인 반응으로 연주자를 기쁘게 하는 한국 청중들도 분명 좋아해 주리라 믿어요.”
벌써 15년 넘게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으로 활동 중인 도어는 지금도 연주의 무게 중심을 솔로 독주회가 아닌 오케스트라 공연에 두고 있다. 인지도도 충분하고 기량은 세계 최고인데 적극적인 솔로 연주로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고 싶은 생각은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도어는 “솔리스트만으로 살기에는 오케스트라를 너무 사랑한다”는 대답을 들려줬다. “혼자 연주를 한 뒤에 오케스트라로 돌아오면 마치 내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낍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을 함께 꾸려가는 최고의 지휘자, 최고의 연주자들로부터 매일 깊은 영감을 받아요. 저의 연주 실력은 오케스트라를 위해 갈고 닦은 것이지 나 혼자 빛나기 위해 얻은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호른을 가능한 한 오래 붙들고 나의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제공=서울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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