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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여는수요일]이슬의 탄생

이덕규 作

주로 식물에 기생한다 입이 없고

항문이 없고 내장이 없고 생식이 없어

먹이사슬의 가장 끝자리에 있으나 이제는

거의 포식자가 없어 간신히 동물이다

태어나 일생 온몸으로 한곳을 응시하거나

누군가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한순간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진다 짧은 수명에

육체를 다 소진하고 가서 흔적이 없고

남긴 말도 없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지만 일설에,

허공을 떠도는 맹수 중에



가장 추하고 험악한 짐승이 일 년 중

마음이 맑아지는 절기의 한 날을 가려

낳는다고 한다 사선을 넘나드는

난산의 깊은 산통 끝에

온통 캄캄해진 몸으로 그 투명하게

반짝이는 백치의 눈망울을 낳는다고 한다





풀잎 휘어지게 앉아 있으니 기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명수죠. 항문도 내장도 생식도 없지만 불구가 아니라 온전하죠. 불멸의 미신에 사로잡히지 않으니 눈 깜박할 사이에 떨어져도 미련 없죠. 오, 나의 어머니가 맹수인 걸 눈치채셨군요. 가장 추하고 험한 짐승일지라도 제 안의 자욱한 슬픔에 눈감을 때 나는 그 속눈썹에 매달리죠. 때로 어둡고 막막한 길 걷는 당신, 흐린 동공을 씻어 세상을 투명하게 비춰주죠.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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