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외국인 독립유공자들을 찾아내는 활동은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캐나다에 3·1운동을 알리는 것처럼 그 후손들이 전 세계에 3·1운동 정신을 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3·1운동의 기억을 생생하게 살리는 작업이죠.”
‘서른네 번째 푸른 눈의 민족 대표’로 꼽히는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의 손자 딘 케빈 스코필드(57)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았다. 캐나다 출신인 스코필드는 27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외국인인 할아버지가 (한국의) 독립운동가라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는 1916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로 한국에 들어와 1919년 삼일절, 제암리 학살 현장 등을 사진으로 남겨 3·1운동과 일제의 만행을 외국에 널리 알린 주역이다. 1920년 일제가 그를 추방했지만 지난 1958년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고아원을 운영하며 눈을 감는 날까지 한국의 아이들을 도운 그는 1970년 외국인 최초로 현충원에 안장됐다.
스코필드는 당시 외국인 선교사들이 독립운동을 지원해준 점을 들어 “할아버지뿐 아니라 당시 다른 외국인 선교사들이 한 활동을 알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일 것”이라며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등불과 같은 분인데 다른 선교사들의 업적이 알려진다면 그들의 가족 또한 등불을 얻게 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손자의 기억 속 할아버지는 엄혹한 환경에서도 한국의 독립을 열성적으로 지지했다. 그는 “하루는 할아버지가 급한 일이 있어 연구소에 갔는데 일본 정부가 괴한을 집으로 보내 할아버지를 암살하려고 한 일도 있다”며 “할아버지가 3·1 만세운동이 한눈에 들어오는 사진을 찍으려고 건물에 올라갔다가 일본인 여성에게 빗자루로 맞은 적도 있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할아버지의 정신은 스코필드 가문에 대대로 이어지고 있다. 증손자 중 한 명은 3년 전 캄보디아의 빈민가 학생들을 돕기 위해 밴쿠버에서 플로리다까지 자전거 일주를 하며 기금 마련 행사를 펼쳤다. 다른 증손녀도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을 돕고 있다.
스코필드는 한국에 대해서도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그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이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며 “한국에 올 때마다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새롭게 배우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28일에는 동생과 함께 현충원에 있는 할아버지를 보러 갈 계획”이라며 “항상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돕고자 했던 할아버지도 지금 발전한 한국을 보시면 놀라실 것”이라며 웃었다. /김지영·김인엽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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