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후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 해발 1,049m에 위치한 한국공항공사 강원항공무선표지소.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차로 10여분을 달려 산 정상에 도착하자 길 한 편에 철조망에 둘러싸인 건물이 나타났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표지소 내부로 들어서자 대형 안테나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항공기가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도록 등대 역할을 하는 관제통신시설이다.
이날 찾은 강원표지소는 국내 최초로 세워진 항행안전시설로 지난 1973년 문을 열었다. 전국 10개 표지소 가운데 강원표지소는 미주, 중국·일본, 포항 3개 항로를 담당한다. 하루 평균 150대의 항공기가 항로에 진입하면 표지소에서 전달하는 전파신호를 받아 목적지까지 안내된 항로로 운항한다.
표지소에서 전달되는 신호는 방향과 거리 정보뿐만 아니라 항공기 조종사와 관제사의 통신도 지원한다. 민항기에 방위각 정보를 제공하는 전방향표지시설(VOR)과 군용기에 방위각 및 거리정보를 제공하는 전술항법시설(TACAN), 민항기 조종사와 관제사 간 교신을 중계하는 항로관제통신시설(U/VHF)이 각각 설치돼 있다. 각기 다른 기능을 가진 안테나가 항공기와 관제사를 연결하고 실시간으로 항로 정보를 제공해 다른 항공기와 충돌 없이 하늘길을 안전하게 날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현경호 강원항공무선표지소장은 “교통신호기가 고장 나면 도로에서 교통 흐름이 꼬이듯 하늘길이 먹통이 되면서 항로를 날던 수백대의 항공기가 뒤엉키는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등대지기처럼 항공기 안전을 책임지는 ‘표지소 지킴이’로 하늘길 안전을 책임진다는 사명감을 갖고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항공기 운항이 급격하게 늘면서 각국마다 항행안전시설에 대한 관리가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그 중에서도 무선표지소는 공항 운영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항행안전시설로 승객의 안전·보안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 영공을 지나는 항공기 숫자가 급격하게 늘면서 표지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전파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주로 오지에 설치된 표지소의 경우 지리적인 특성상 태풍이나 폭설로 전력공급이 중단되거나 장비가 파손될 위험도 있다. 전력이 끊겨도 자체 비상전력으로 가동되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만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표지소에는 직원 6명이 교대로 365일 24시간 자리를 지킨다. 한국공항공사는 올해를 ‘공항 안전 무결점 경영 원년의 해’로 선포하고 표지소를 비롯한 항행안전시설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부터 자체개발한 항행안전시설 점검용 드론을 전국 표지소에 투입해 전파신호를 실시간으로 측정·분석하고 있다. 실제 항공기를 대신해 공항 또는 항공로 주변 신축건물 등으로 표지소에서 전달하는 전파의 왜곡현상과 항공주파수 대역을 침해하는 유해전파에 대한 실제적 분석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손창완 한국공항공사 사장은 “최고의 서비스는 최고의 안전에서 시작된다”며 “올해 공사가 표지소를 인수해 운영한 지 20년을 맞은 만큼 항행안전시설을 포함한 모든 공항 안전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관령=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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