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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이땅의 딸과 어머니들을 대신해 쓴 詩

■꽃보다 먼저 꽃 속에

김진엽 지음, 천년의시작 펴냄





“물간에 가둬놓은 별/ 살아서 헤엄치는 달”에서 정겨운 바다 내음과 벗어나지 못하는 질퍽한 섬 생활이 뒤엉킨다. “새끼들의 똥을 닦아주는 바다/ 밥알 흘리는 턱을 훔치는 바다/ 짠물 빠진 적 없는 마디 억센 바다”는 미우나 고우나 고향이다.

지난 2000년 ‘조선문학’으로 등단한 김진엽 시인의 첫 시집 ‘꽃보다 먼저 꽃 속에’(천년의시작 펴냄)가 출간됐다. 경남 통영의 섬 사량도 출신인 시인인지라 고향인 섬과 바다 이야기가 다단하다.

초로(初老)에 접어든 시인의 울컥거리는 심경은 특히 돌아가신 어머니의 기일을 소재로 한 여러 편의 시를 낳았다. “…잊은 것이 있나/ 놓친 것이 있나// 어룽어룽 눈물 달력 가만히 본다”하고서야 생각난 엄마 제삿날에는 “수평선이 붉고 환하다/ 어머니,/ 물길로 오시려나 보다” 기다리고 “절구도/ 나도/ 먼 하늘을 보며/ 엄마, 하고/ 나직하게 불러본다”.

시대적으로, 사회적으로도 시인은 변두리 인생이었으리라. 여자로 태어나 겪은 설움, 남도 끝자락 생활의 외로움 같은 것들이 시에 물씬 배어 있다. “세상이 늘 서운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시 ‘서분이’가 작가 자신을 가리키는 것인가 싶다가도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그것이 같은 시대를 살았던 모든 딸들과 어머니의 이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딸로, 어머니로만 살아가다 보니 오롯한 자신의 이름으로 불려본 적 없어 서러운 이들 말이다.



그래서인지 시인은 귀가 밝다. “잠결에 뒤척이는 그녀의 갈라진 발뒤꿈치/ 이불 긁히는 소리…”도 듣고 “외로운 사람들이/ 처마 끝에 매달아 놓은/ 젖은 구릿빛/ 형벌”에 갇힌 “할 말 많은 벙어리”의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고운 귀를 가졌다.

설움에 주저앉아 울음 참는 시인의 눈은 낮게, 땅 가까이에서 세상을 본다.

“잔디 마당이 온통 개미집이다/(중략) 가벼이 흩어질 줄이 아니다/엄숙한 행진// 잠시 죽고 사는 근심 잊었다”(‘줄’ 중에서)

그렇게 낮게 핀 꽃들에 시인의 눈이 머물렀다. 희로애락을 꽃에 빗대는 그는 화려하게 피는 꽃보다 조용히 지는 꽃을 더 눈여겨보고, 봄꽃의 향연 아닌 시월의 구절초나 담장 밑의 수국을 보며 더 깊게 읊조린다. “꽃밭이 작아서/ 다 솎아버린다고 했다”는 남의 집 앞에서 “번지고 번져야 사는 아이들/ 있을 만큼만 두고 버리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더군다나 꽃을,”이라며 가슴을 친다. 익숙한 풍경 속, 별스럽지 않은 시어라 더욱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9,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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