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한미동맹에 “흠집이 나 있다”면서 “동맹을 수선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 전 사무총장은 2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한미의 톱니바퀴를 튼튼히 해야 남북 톱니바퀴를 제대로 수선할 수 있다”며 “현 상태에서 본격적인 남북 경제협력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반 전 사무총장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미세먼지 범국가기구 위원장직을 수락한 바 있다.
반 전 총장은 “그동안 남북·한미·북미 톱니바퀴 중 어느 것 하나 단단하지 못했고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지도 못했다”며 “특히 삼자 모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원칙 앞에 취약점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한미는 비핵화를 북한 핵 전면폐기로 이해했지만 북한은 북핵 활동 동결과 미국의 핵우산 제거로 간주하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반 전 총장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한미의 생각을 모를 리 없다”며 “대북 제재에 따른 경제위기를 모면하고 이 모호한 표현을 통해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짚었다.
반 전 총장은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비핵화’는 “살라미처럼 너무 얇게 잘랐기 때문에 단계적 접근으로 볼 수 없다”고 평가한 뒤 북한이 나중에 말을 바꿀 수 없도록 ‘빅딜’이라는 큰 틀을 씌우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1992년 남북 간 비핵화 공동선언과 2005년 북핵 6자회담 9·19공동선언 등의 약속을 했음에도 결국 핵무기 개발로 나아갔던 점에 대해 “외국 속담에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 잘못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라는 이야기가 있다”며 “이제는 우리가 그걸 염두에 둬야 한다”고 북한을 향한 불신을 드러냈다.
반 전 총장은 또 “핵을 가진 북한과 같이 살 수 없다”며 “북한이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폐기해야 한다는 게 대한민국의 입장이 돼야 한다. 이는 노태우 대통령 때부터 이어온 한국의 일관된 정책”이라고 밝혔다.
한미동맹에 흠집이 나 있다는 평가와 관련해 반 전 총장은 “아직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친구 관계에서도 우애를 확인하는 게 필요하듯이 동맹관계에서도 서로 관리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우리가 조금 더 ‘케어’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난 것은 “실망스러운 결과”라면서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장이 명확해졌다는 점을 성과로 볼 수 있다고 반 전 총장은 평가했다.
반 전 총장은 북미대화 국면에서 ‘중재자’ 혹은 ‘촉진자’를 자처하는 한국 정부의 역할에도 아쉬운 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반 전 총장은 “문 대통령이 추구하는 목표, 정책에 대해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어프로치(접근)를 해야 한다”며 “지금까지 남북정상회담을 세 번, 북미정상회담을 두 번 한 상황에서도 (북핵 협상이) 잘 안 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정부도 숨을 한 번 들이쉬고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에 정부가 의지를 보인 데 대해서는 “남북경협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가 유지되고 있으니 국제사회의 분위기도 봐가면서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가들의 입장을 잘 살피며 하는 게 낫다”면서 “무조건 우리는 여기로 가겠다고 ‘마이웨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한미 외교당국은 오는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간 회담 개최를 최종 조율하고 있다. 성사되면 북한 동향과 관련한 정보를 공유하고 북미대화 재개를 위한 방안을 집중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태규·박우인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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