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중국 증시가 20%나 폭락하자 당국에서 이례적인 성명서를 내놓았다. 혁명원로의 자제그룹인 태자당(太子黨)이 마윈 알리바바 회장을 앞세워 시세차익을 노리고 선물 공매 후 폭락한 주식을 현금으로 매입해 금융시장이 불안해졌다며 비판한 것이다. 결국 류윈산 정치국 상무위원의 아들 류러페이가 그해 10월 전국인민대표대회 기간에 조사를 받았고 원자바오의 아들 원윈쑹도 체포되는 등 태자당에 일대 회오리가 몰아쳤다. 지난해 9월 마 회장이 돌연 은퇴를 선언하자 신변 안전을 위해 결단을 내렸다는 관측이 나왔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태자당은 문화대혁명 때 숙청됐다가 복권된 원로간부들을 퇴진시키는 대가로 그들의 혈육에게 특전을 제공하면서 엘리트세력으로 떠오르게 됐다. 이들은 1958년 대약진운동 당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문혁을 겪었던 10대 청소년기에 시골로 쫓겨나 정치적 고초를 겪었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믿을 수 있는 혈통이라는 기반을 갖춘데다 엘리트교육을 통해 능력을 입증받은 것은 물론이다. 태자당은 국유기업을 중심으로 재계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으며 ‘관시(關系)’를 중시하는 금융이나 로비업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는 “다른 나라들도 권력 있는 집안이 있지만 중국에서는 이들이 정계와 재계의 주력군”이라고 평했을 정도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혁명원로인 시중쉰 전 부총리의 차남이면서 태자당 출신을 배경으로 권력의 정점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시 주석이 집권 이후 태자당 인물을 예상만큼 중용하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태자당은 개방적인 분위기에 젖어 있어 개인 숭배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에는 덩샤오핑의 장남이자 태자당의 황제로 불리는 덩푸팡이 “우리는 함부로 잘난 체 말고 함부로 스스로 얕보지도 말아야 한다”며 정부 정책을 작심 비판해 파장을 빚기도 했다.
태자당 소속의 인사 200여명이 최근 열린 건국 50주년 행사에서 시 주석의 업적을 찬양하면서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다고 한다. 시 주석이 반부패 척결의 칼날을 앞세워 자신들을 옥죄자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포기하는 양상이다. 중국 정부는 최근 권력투쟁을 연상시킨다며 궁중 사극도 전면 금지했다. 바람이 불면 풀은 눕는다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들어맞는 듯하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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