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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야단법석] 남의 정자로 인공수정한 자녀도 남편 친자식일까

"혼인 중 임신하면 남편 자식" 친생추정

1950년대 제정된 민법 원칙 60년 넘어

과학 발전으로 친자확인·인공수정 쉬워져

대법 5월22일 공개변론… 법리 변경 관심





우리 민법은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한 자녀는 일단 모두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하도록 한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결혼한 여성이 낳은 아이의 친부를 가릴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부정하기 시작하면 아내에 대한 의심이 한도 끝도 없이 커져 가정의 평화가 깨진다. 태어난 아이의 복지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여성이 아이를 낳을 때마다 일일이 남편의 자녀임을 증명해야 하는 수고도 필요하다. 친생추정의 원칙을 부정하려면 단순한 반증으로는 불가능하다. 오로지 친자 소송을 거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현대 과학이 발전하면서 철옹성 같던 민법의 친생추정 원칙에도 변화가 생겼다. 혼인과 친생자의 관계를 뿌리부터 다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60년 된 민법엔 “혼인 중 임신하면 남편 자식”=민법 상 친생추정 조항의 역사는 의외로 길다. 혼인이 성립한 날부터 200일 후에 출생한 자녀와 혼인관계가 종료된 날부터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녀는 혼인 중 임신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규정한 민법 제 844조(남편의 친생자의 추정)는 이승만 정부 때인 지난 1958년 제정됐다. 2017년 처음 개정될 때까지 무려 60년 가까이 변함없이 유지됐다. 2015년 헌법재판소에서 민법 제844조 2항의 ‘혼인관계가 종료된 날부터 300일 이내’라는 요건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규제가 다소 완화는 됐지만 지금도 원칙은 큰 틀에서 같다.

그나마 법원에서 일부 예외를 인정한 것도 벌써 36년 전이다. 지난 1983년 대법원 판례는 아내가 남편의 자녀를 임신할 수 없는 사정이 명백한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부부 중 한 명이 장기간 해외에 나가 있거나 사실상의 이혼 관계처럼 별거하는 경우 등 극히 일부의 경우가 해당된다.



◇과학 발전으로 친생추정 조항 논란 확산=요지부동처럼 여겨졌던 친생추정의 원칙은 오늘날 헌재 결정보다 더 큰 변수를 마주했다. 1950년대엔 미처 예상치 못했던 과학의 발전이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친자 확인 증명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쉬워졌다. 혼인 중 태어났다는 이유로 모든 자녀를 남편의 친생으로 추정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게다가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과 같이 새로운 임신·출산 형태가 등장하면서 ‘친생자 관계’라는 개념 자체도 재정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게 됐다.

법학계에서는 이제 친생추정을 무조건 혼인기간으로만 판단할 게 아니라 과학적·객관적으로 증명 가능한 유전자형 배치를 기준으로 판단하자(혈연설)는 주장이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또 가정의 파탄 여부도 고려해야 한다(가정파탄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제3자 정자에 의한 출산이 명백한 경우에도 소송 가능 기간만 지나면 무조건 남편의 친생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기존 법리가 과연 타당한지에 대한 의문이 법조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물론 혼인으로 이미 형성된 사회적 친자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며 기존 법리를 지켜야 한다는 견해도 만만찮은 상황이다. 친생자 여부는 사회생활의 기초가 되는 가족관계의 형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부양·상속 등의 문제와도 얽혀 있는 만큼 법리 변경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연합뉴스


◇교통정리 나선 대법원=친생추정 논란이 사회적 문제로 확산됨에 따라 대법원도 교통정리에 나섰다. 대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오는 5월22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서울 서초동 청사 2층 대법정에서 A씨의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상고심에 관한 공개변론을 연다. 대법원은 해당 변론을 참고해 늦어도 올 하반기 최종 선고를 내릴 방침이다.

사건의 쟁점은 제3자 정자를 통해 인공수정으로 낳은 자녀의 친생자 관계 인정 여부다. 지난 1985년 결혼한 A씨 부부는 A씨가 무정자증으로 아이가 생기지 않자 제3자에게 정자를 제공받아 1993년 시험관시술로 딸을 낳았다. 이후 A씨의 부인은 혼외 관계로 1997년 둘째 자녀를 더 낳았다. 둘째 역시 A씨와 부인의 자식으로 출생 신고했다.

A씨 부부가 2013년 협의이혼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두 자녀는 처음으로 그들이 A씨의 친자식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됐다. A씨는 부인과 양육비 갈등을 겪다가 자신과 두 자녀 간에 친생자 관계가 없음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A씨는 첫 딸 인공수정에 대해서도 “묵인은 했어도 동의하지는 않았다”는 입장을 보였다.

1심과 2심은 “A씨가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에 동의한 이상 소송 제기 자체가 부적합하다”며 A씨의 패소를 결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문제를 좀 더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대법원은 대한변호사협회, 법무부,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여성가족부, 한국민사법학회, 한국가족법학회, 한국가족관계학회, 한국헌법학회 등에 참고 의견서 제출을 요청하고 민사법·가족법 전문가, 담당 부처 관계자 등을 참고인으로 불러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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