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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에세이] 어머니와 딸

김용범 순천향대 서울병원 정형외과 교수





70대 여성이 딸의 손을 잡고 진료실에 들어왔다. 환자는 두 다리가 ‘O’자로 휘어 있고 뒤뚱거리며 힘겹게 걸었다. 무릎의 퇴행성 변화에 따른 통증이 심해 보였다.

무릎이 아파서 오셨느냐고 묻자 환자는 “많이는 안 아파요”라며 살며시 웃으셨다. 하지만 육안으로 봐도 무릎은 휘었고 부었으며 자꾸 손으로 무릎을 만져 심한 퇴행성 관절염이 의심됐다. X선 촬영사진을 보니 무릎은 연골이 모두 닳아 진작에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어야 할 정도로 상태가 나빴다.

많이 아팠을 텐데 치료를 안 받으셨느냐고 묻자 환자는 “그냥저냥 지낼 만했어요”라며 다시 미소를 지으셨다. 그러자 딸이 미간을 찌푸리며 답답한 듯 언성을 높였다. “뭘 지낼 만해. 맨날 아프다고 걷지도 못하면서. 밤에 아파서 잠도 못 자잖아.” 환자가 작은 목소리로 “그 정도는 아니야”라고 하자 딸은 큰 목소리로 역정을 냈다. “아우 답답해. 이제는 좀 아프면 아프다고 하고 치료 좀 받아. 선생님 수술해야 돼요? 빨리 수술 날짜 잡아주세요.”

젊어서부터 집안일 하면서 농사를 짓고, 자식들을 키우면서 아픈 남편 병 수발을 하고, 이제는 일하는 딸 대신에 손주들까지 키우느라 정작 자신의 몸은 돌볼 시간도, 여유도 없이 묵묵히 일만 하신 어머니. 본인의 무릎관절 연골이 다 닳아 없어진 줄도 모르고, 넙다리뼈(대퇴골)와 정강뼈(경골)가 맞닿아 염증이 심하고 관절이 붓고 통증이 심할 텐데 그저 ‘쉬면 나아질 거야’라며 제대로 된 치료를 차일피일 미루고 진통제만 드신 모양이었다. 딸은 그런 어머니가 안쓰럽고 답답했으리라. 또 미처 건강에 신경을 써드리지 못하고 병원에 늦게 모시고 온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목소리를 높였으리라.

필자는 재생이 안 되는 무릎관절의 연골이 이미 다 닳아 더 이상 약물·물리치료 같은 보존적 치료는 효과가 없으므로 본인의 관절 대신 인공관절로 바꿔주는 수술(인공관절 치환술)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환자는 “아유, 수술은 무슨…. 돈 들고 손주도 봐야 하니까 약이나 처방해주세요”라고 했다.

딸은 어머니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손주는 무슨…. 안 봐줘도 돼. 돈 걱정하지 말고 수술 받아.” “교수님 수술해주세요. 되도록 빨리요.”



환자에게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받으면 지금보다 덜 아프고 잘 걸을 수 있어 손주도 더 잘 돌볼 수 있다고 설득하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수술 전 검사를 위해 어머니와 함께 진료실 밖으로 나갔던 딸이 잠시 후 돌아와 울먹거리며 말했다. “교수님 우리 엄마 잘 부탁드립니다. 더 빨리 모시고 왔어야 하는데 저 살기 바빠서…. 면목이 없네요.”

가족과 자식을 위해서라면 좋은 옷 안 입고, 맛있는 음식 안 먹고, 아픈 것도 참으며 기꺼이 희생하시는 우리네 어머니들. 이런 어머니를 사랑하고 감사해 하지만 일과 육아 등에 치여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미처 챙기지 못하고 표현에 서툰 자식들.

환자는 1주일 뒤 수술을 받았다. 환자의 무릎은 연골이 남아 있지 않고 뼈의 변형까지 진행된 심한 퇴행성 관절염 상태였다. 인공관절 수술은 잘 마무리됐다.

수술 후 회진을 가자 환자는 수술 통증이 심할 텐데도 언제나처럼 살며시 미소 지으며 수줍게 “선생님 고생하셨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환자의 손을 잡고 “많이 아프시죠. 수술 잘 되었어요. 며칠 지나면 잘 걸으실 거예요”라고 말한 뒤 환자와 딸에게 수술 경과와 향후 일정에 대해 설명했다. 딸은 병실 밖까지 나와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와 딸의 흐뭇한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새로운 관절은 어머니 인생을 위해 사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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