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목 시세보기

서울경제

HOME  >  오피니언  >  사내칼럼

[만파식적]성락원

  • 홍병문 논설위원
  • 2019-04-18 17:31:56
  • 사내칼럼
[만파식적]성락원
성락원의 송석정

조선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은 항일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로 꼽힌다. 1899년 스물두 살에 미국 유학을 떠났다가 6년여 만에 귀국해 일제의 감시를 받다 1919년 상하이임시정부에 합류하기 위해 중국으로 탈출한다. 고종의 후손 왕족 가운데 가장 위험한 인물로 의친왕을 꼽고 있던 일본은 그가 사라지자 추적에 나섰고 랴오닝성 단둥에서 체포해 국내로 송환했다. 일제의 감시 속에 서울 성북동의 별궁 성락원에서 비운의 삶을 살다 한국전쟁 후 곤궁한 피난 생활 끝에 1955년 노환으로 사망한다. 의친왕의 다섯째 딸인 이해경씨는 회고록에 그가 성락원을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내주기도 했다고 기록했다.

성락원은 1790년 처음 조성된 후 19세기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이 별장으로 소유했다. 이후 의친왕이 30년 넘게 별궁으로 사용했고 심상응의 후손인 고(故) 심상준 제남기업 회장이 1950년 사들였다. 문화유적 전문가들은 전남 담양 소쇄원, 전남 보길도 부용동과 함께 성락원을 국내 3대 전통 정원으로 꼽는다. 성락원이라는 이름은 서울 도성의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정원이라는 뜻을 담았다.

서울 시내에 유일한 조선 시대 후기의 별장 정원인 성락원이 23일부터 일반에 공개된다고 한다. 인공 조형미보다 자연의 미를 그대로 살린 운치가 일품인 성락원이 그동안 일반에 개방되지 못한 것은 사유지였기 때문이다. 1년에 한두 차례 지역 행사 등을 위해 성락원 문이 잠시 열린 적은 있어도 일반에 전격 개방되는 것은 처음이다. 성락원은 6월11일까지는 일주일에 사흘간, 하루에 일곱 차례 단체관람이 허용되고 정식 개방은 내년 가을께 시작된다고 한다.

의친왕이 단둥에서 일본 경찰에 붙잡히지 않고 상하이임시정부로의 탈출에 성공했다면 항일운동의 전면에 나섰을지도 모른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왕손인 그가 합류했다면 상하이임시정부에는 적지 않은 힘이 보태졌을 것이다. 사실상 망명을 시도했던 그의 상하이임시정부 행보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그와 연계된 국내 항일 조직도 타격을 입었다고 하니 안타까움이 더하다./홍병문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XC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이메일 보내기

보내는 사람

수신 메일 주소

※ 여러명에게 보낼 경우 ‘,’로 구분하세요

메일 제목

전송 취소

메일이 정상적으로 발송되었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