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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워치] 37개 업체가 지분 수없이 쪼개 판매...청년들에 '땅 다단계 영업'도 버젓이

■수천억대 토지 어떻게 팔아먹나

'케이비' '우리' '신한' 등 이름으로

수십개 계열 업체들이 땅 사들여

개인들에 3~7배 뻥튀기해 팔아

한 필지에 소유자 3,000명 되기도

자금 넉넉지 않은 서민층이 타깃

매매 땅 대부분 개발 가능성 적어





“평생 못 쓰는 땅이네요.”

지난 30여년 동안 부동산 개발의 외길을 걸어온 한 시행사 대표는 최근 기획부동산 필지 중 최대어로 꼽히는 ‘경기도 성남시 금토동 산 73’의 위치를 확인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 땅은 청계산의 국사봉과 이수봉에 걸쳐 있다. 이곳을 개발하려면 산을 능선까지 파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필지의 공유인은 12일 기준 3,485명. 초대형 아파트단지 가구 수에 육박한다. 예상 총판매액은 약 1,000억원. 본지가 찾아낸 최근 10개월간 기획부동산이 관여한 공유인 수 기준 상위 50개 필지 중 인원 수나 가격으로나 단연 1위다.

거래의 시작은 지난해 7월27일이었다. 이날 케이비☆☆, 코리아☆☆, 우리☆☆ 등 3개 회사는 153억6,070만원에 이 땅을 사들여 50만7,440㎡, 46만2,812㎡, 41만4,712㎡로 각각 나눴다. 이후 우리☆☆사는 우리○○사, 우리◇◇사, 신화☆☆ 등에 지분을 팔고 코리아☆☆사는 더신한☆☆사, 신한☆☆사 등에 지분을 넘긴다. 이렇게 총 19개 업체가 이 땅의 지분을 쪼개 가진 다음 개인들에게 팔아넘겼다.

기획부동산이 손을 댄 다른 필지들도 방식은 다를 바 없다. 일반매매나 경매 또는 공매를 통해 토지를 확보한 뒤 한 집단을 이룬 업체들끼리 지분을 나눈 것이다. 이후 각각의 지분을 더 잘게 쪼개 개인에게 되판다. 이때 판매가격은 매입가의 3~7배까지 치솟는다. 한 건당 판매액은 500만~5,000만원 수준이다.

최근 가장 많은 필지를 차지한 기획부동산 집단은 세 계열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사명으로 구분하면 ‘케이비’ ‘우리·청구’ ‘신한·하나’ 등이다. 케이비 계열은 6곳, 우리·청구 계열은 14곳, 신한·하나 계열은 17곳이 발견됐다. 앞서 언급한 금토동 산 73이 바로 세 계열이 모두 들어간 땅이다. 이외에 케이비와 우리 계열이 같이 들어간 필지는 17곳이며 신한·하나 9곳, 우리 8곳, 케이비 2곳 등이다.



이들의 법인 등기임원을 살펴본 결과 각 계열 업체는 사실상 한몸에 가깝다는 것이 확인됐다. 케이비 계열에서는 케이비☆☆사 대표이사 임모씨가 케이비○○사의 전 감사였다. 또 케이비○○사의 전 사내이사 조모씨는 케이비◇◇사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청구 계열에서는 1982년생인 김모씨가 우리○○사 전 대표이사, 우리△△사 전 감사, 청구○○사 전 사내이사를 역임했다. 또 1986년생인 이모씨는 현재 청구☆☆, 청구○○, 씨엔지☆☆ 사에서 동시에 사내이사로 올라 있다. 이외에 하나·신한 계열 법인과 두 번째로 큰 집단인 나라 계열 법인 5곳에서도 중복되는 임원이 여럿 발견됐다.

이들 집단은 필지당 수십억원에 달하는 토지들을 매입했지만 담보대출도 받지 않는다. 지분을 팔려면 근저당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업체 등기 등에 드러나지 않은 대규모 자금원인 이른바 ‘쩐주’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짙은 상황이다.

이들의 타깃은 주로 ‘불패신화’인 땅에 투자하고 싶으나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서민층이다. 이들이 투자자를 현혹하는 방법은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청년층 취업난에 편승해 채용을 빌미로 다단계 영업을 하기도 한다. 신입직원들에게 마치 은밀한 정보인 것처럼 각종 투자개발 계획 등을 흘리는 식이다. 여기에 홀린 직원은 본인은 물론 가족과 친구들까지 다단계의 늪에 빠뜨리고 만다. 일부 업체는 ‘우리사주’ 제도처럼 직원에게만 우선 투자지분을 지급한다며 쓸모 없는 땅을 고가에 팔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기획부동산들이 팔고 있는 필지의 개발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들은 입지와 호재, 주변 개발계획 등을 언급하며 언젠가 가치가 급등할 것이라 주장하지만, 부동산업계에선 고개를 젓는다. 해당 필지들은 보통 반영구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강력한 규제로 묶여있는데다, 만약 규제가 풀린다 해도 토지를 개발하려면 전체 지분권자의 동의가 있어야 해 사업이 녹록지 않아서다. 특히 개발이 가시화되기 전에는 다른 개인이 지분을 살 이유는 없어 재현금화가 불가한 ‘묶인 돈’이란 평가다. 국내 유수의 부동산개발업체 대표는 “기획부동산을 통해 투자한 토지 지분의 이익을 실현하려면 우리 같은 디벨로퍼에게 매각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다만 디벨로퍼가 수백~수천명의 지분권자를 일일히 접촉해 매입해가면서까지 사업을 추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전했다.

기획부동산 업체들의 지분거래나 법인운영에 불법성이 없는지 담당부처인 국토교통부나 경찰·검찰·국세청 등의 합동조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기획부동산의 거래 자체는 위법이 아니기에 거래가를 허위로 한다거나 피해를 본 사례 등이 드러나야 수사권을 발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5년 대리인을 내세워 기획부동산을 운영하며 180억원 상당의 토지를 팔아치운 A씨 일당을 44억원 탈루 혐의(조세범처벌법 위반) 등으로 기소한 박종일 전 부산지검 형사5부장(현 법무법인 태환 변호사)은 “당시 기획부동산은 심각한 서민생활 침해 범죄여서 실체를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의심되는 업체가 발견돼 국세청과 힘을 합쳐 수사한 뒤 기소했다”며 “기획부동산의 경우 투자가 사기로 판명되면 가족이 해체될 정도로 파장이 커 불법 업체에 대한 적극적인 적발과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권형·강동효·이재명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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