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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스킨 인 더 게임] 무책임한 권력이 '흑조'를 깨운다

■나심 탈레브 지음, 비즈니스북스 펴냄

"행동과 책임 분리했던 관료들

9·11테러와 금융위기 초래"

관료제 대신 지방 분권화 통해

책임있는 의사결정권자 확대 주장





레바논 출신의 금융 전문가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일약 월스트리트의 예언가로 떠올랐다. 한 해 앞선 2007년 출간한 ‘블랙 스완’에서 머지않아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 충격파가 몰려올 것이라고 경고한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책에서 블랙 스완이라는 개념을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지만 실제 발생할 경우 시장에 엄청난 혼란을 가져오는 사건’으로 정의했다. 1697년 호주 대륙에서 검은 백조가 발견되면서 ‘백조는 희다’는 통념을 깬 실제 사례를 경제 현상에 적용한 개념이었다.



‘스킨 인 더 게임’은 탈레브의 한층 깊어진 문제의식을 만나볼 수 있는 역작이다. 현재 미국 뉴욕대학교 폴리테크닉연구소의 특훈 교수로 재직 중인 탈레브는 이 책에서 거침없는 화법으로 제2의 블랙 스완을 피하는 방안을 설명한다. ‘스킨 인 더 게임’은 ‘블랙 스완’ ‘행운에 속지 마라’ ‘안티 프래질’ 등에 이은 이른바 ‘불확실성 시리즈’의 완결판이다. 이 시리즈는 세계 36개국에서 출간돼 모두 화제의 밀리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이번에 번역·출간된 신작은 ‘자신이 책임을 안고 현실 문제에 참여하라’는 뜻을 지닌 경제학 용어를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

탈레브는 목소리만 높일 뿐 책임은 지지 않는 관료·기업인·학자가 21세기 세계 역사를 망쳐놓았다고 주장한다. 오래전 미 국무부는 지식인 사회의 건의를 수용해 이슬람 지역에서 온건주의 반체제 세력이 조직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 세력은 후에 ‘알카에다’라는 이름을 내건 조직으로 성장했고 2001년 끔찍한 9·11 테러를 저질렀다. 저자는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관료 조직의 무모한 용감함이 무시무시한 적을 키웠다고 꼬집는다.



이슬람 테러단체인 알카에다가 2001년 9월11일 미국 뉴욕에서 일으킨 테러로 월드트레이드센터가 폭파되고 있다.


탈레브가 예언한 금융위기 사태 당시에도 책임질 줄 모르는 리더의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일례로 미국 재무부 장관 출신인 로버트 루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시티은행 회장으로 10년 가까이 일하면서 1억2,000만 달러가 넘는 보수를 챙겼다. 그러다 금융위기 이후 그가 경영하던 시티은행이 지급불능 사태에 빠지면서 정부는 막대한 규모의 재정을 투입했다. 은행을 위기의 늪에 빠트린 주범인 루빈 회장은 아무 책임을 지지 않은 대신 죄 없는 납세자들이 고통을 분담한 것이다. 루빈 회장은 그저 탈레브를 흉내 내듯 “검은 백조가 나타났다”는 말 한마디만 던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행동과 책임의 균형’이라는 책의 핵심 주제를 꺼내 든다. 많은 고대 그리스인들은 ‘파테마타 마테마타’라는 격언을 삶의 지침으로 삼았다. ‘아픔을 통해 배우고 성숙한다’는 뜻을 지닌 이 격언은 뒤꽁무니만 빼고 달아나는 무책임한 리더의 행태를 꼬집고 행동과 책임을 조화시키는 방안의 실마리를 찾는 데 유용하다. 탈레브는 큰 판돈을 걸고 게임을 시작하면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듯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일일수록 자신의 핵심 이익이 걸려 있는 사람이 그 업무에 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일단 공공부문에서 정책 결정을 주도하는 관료제의 기능을 대폭 축소한 뒤 지방 분권화를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관료제야말로 조직 구성원의 책임을 회피하도록 설계된 제도인 만큼 분권화를 통해 책임을 지닌 의사결정권자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탈레브는 “행동과 책임이 따로 노는 사회는 불균형으로 큰 파열음을 낼 수밖에 없다”며 “책임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분권화를 추진하고 책임을 분산시켜야 사회의 붕괴를 막을 수 있다”고 충고한다. 1만9,800원.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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