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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스포츠라이프
[나윤석의 영화 속 그곳] '만개의 불상'서 헤맨 두 남자, 마음의 지옥에 갇히다

■⑮ 홍콩 만불사-'무간도'

경찰이 된 '깡패'와 깡패가 된 '경찰'

정체 숨긴채 출세가도 달리며 활동

생김새·표정 다양한 불상 놓인 곳

현실-꿈 경계인듯 몽롱한 정취 자아내

자아 혼란스러워하는 주인공과 오버랩

‘만불사’ 위로 올라가는 계단 양옆으로 각양각색의 표정을 한 불상들이 보인다.




영화 ‘무간도’의 스틸 컷.


“8개의 지옥 중에 최악은 ‘무간지옥’인데 그것은 영원한 고통을 의미한다.”

2000년대 홍콩 누아르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무간도(無間道)’는 검은 스크린 위로 불교경전인 ‘열반경’ 제19권의 한 구절을 띄우며 시작한다. 곧 화면이 밝으면 삼합회 중간 보스인 한침(쩡즈웨이분)이 새로 들어온 조직원들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하고 있다.

한침은 새파란 후배들을 향해 “전과 기록이 없는 너희는 이제부터 경찰에 들어가 스파이 노릇을 하게 될 것”이라며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는 경찰에 맞서 스스로 조직을 지키자”고 결의를 다진다.

같은 시각 범죄조직 소탕에 혈안이 된 경찰 역시 비슷한 모의를 꾸미고 있다. 경찰 수뇌부는 경찰학교에서 성적이 가장 뛰어난 학생을 골라 삼합회에 침투시킨다. 공식적으로 그 학생은 일탈을 일삼은 탓에 학교에서 쫓겨난 낙오자로 처리된다. 경찰이 된 깡패 유건명(천관시·류더화분)과 깡패가 된 경찰 진영인(위원러·량차오웨이분)의 운명은 이렇게 엇갈린다. 영화 ‘무간도’는 본래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는 것은 곧 고통으로 가득한 지옥의 문을 열어젖히는 일임을 암시하면서 본격적인 서사의 엔진을 가동한다.

널따란 붉은색 현판이 걸린 ‘만불사’의 법당 전경.


홍콩 카오룽 반도 북쪽의 MTR 샤틴역 인근에 위치한 만불사(萬佛寺)는 영화의 첫 장면을 촬영한 곳이다. 수많은 ‘무간도’ 로케이션 중에서 단연 첫손에 꼽을 만한 관광 명소다. 샤틴역 B 출구에서 5~6분 정도만 걸으면 나오는 만불사는 그 입구에서부터 독특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풍긴다. 구불구불 이어진 계단의 양옆으로 황금빛의 불상들이 줄지어 앉은 채로 손님들을 맞이한다. 절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만불사에는 1만개가 넘는 불상이 자리한다. 불상의 생김새와 표정은 그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다. 어떤 불상은 세속의 모든 고뇌를 떨치고 해탈한 듯 편안해 보이고, 또 다른 불상은 웬만한 희극 배우 뺨칠 만큼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산자락에 드리워진 나무들 사이로 각양각색의 불상을 구경하며 계단을 오르면 이내 영화 촬영지인 법당이 나온다. ‘萬佛’이라는 한자가 적힌 붉은색 현판을 내건 법당은 영화에 나온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한 손으로 너끈히 움켜쥘 만한 ‘미니 불상’을 빼곡히 전시하고 있다. 붉은 바탕에 군데군데 노란색으로 포인트를 준 ‘만불탑’은 법당 맞은편에서 위풍당당한 자태로 눈길을 잡아챈다.

‘만불사’로 향하는 계단 옆에 자리한 불상의 표정이 우스꽝스럽다.




영화 ‘무간도’의 스틸 컷.


영화에서 만불사가 등장한 첫 장면이 지나면 어느새 1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 있다. 경찰 조직에 잠입한 유건명은 우수한 실적으로 승승장구하는 중이고 경찰 신분을 속이고 조직에 들어간 진영인은 부하들을 꽤 거느린 관리자로 성장했다. 진영인의 신분을 아는 유일한 상관인 황 국장(황치우셩분)은 “한침만 검거하면 첩자 노릇을 그만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이후 황 국장은 진영인으로부터 얻은 정보로 한침 조직의 마약 밀매 현장을 덮치지만 이 작전은 경찰 내부의 스파이인 유건명 때문에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각자 조직 안에 상대편의 첩자가 숨어 있다는 의심을 품게 된 경찰과 삼합회는 사활을 건 전쟁에 나선다.

만불사는 중화권 특유의 화려한 색채와 선 굵은 양식 덕분에 한국의 사찰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속세와 저편, 현실과 꿈의 경계에 놓인 공간인 듯 몽롱한 정취를 자아내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를 품은 절을 천천히 돌아다니다 보면 무엇이 진짜 나의 모습이고 원래의 내가 있던 자리는 어디인지 혼란스러워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공간과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만불사를 찾은 관광객들이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무간도’의 스틸 컷.


택시 지붕 위로 추락사한 황 국장을 사이에 두고 경찰과 삼합회가 총격전을 벌어지는 장면은 MTR 셩완역 근처의 ‘관동 인베스트먼트 타워’ 앞에서 촬영됐다. 영화 설정으로는 황 국장과 진영인이 접선하고 진영인이 유건명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클라이맥스 장면도 이 건물 옥상에 찍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참 떨어진 ‘노스포인트 정부 사무소’에서 촬영됐다.

‘무간도’는 범죄 누아르의 외피를 쓰고 선악의 경계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관객은 아무래도 유건명보다는 진영인에게 심정적으로 연민을 품게 된다. 그러나 진영인 역시 ‘가짜 깡패’로 살면서 영화가 생략한 시간 속에서 가끔은 못된 짓을 저질렀을 터다. 영화 초반 황 국장은 진영인을 불러 “왜 자꾸 사람을 패고 다니느냐. 이제 깡패인지 경찰인지 구분도 안 되느냐”고 다그치기도 했다.

“착하게 살고 싶다”는 말로 과거를 지우려 하는 ‘가짜 경찰’ 유건명은 더 나쁜 놈이다. 성공에 눈먼 그는 신분을 감쪽같이 세탁한 채 당국의 최대 골칫거리이자 자신의 보스인 한침을 권총으로 쏴 죽인다. 한침이 경찰 내부에 심은 또 다른 스파이는 진영인의 이마 한복판에 총알을 박음으로써 유건명에 충성을 맹세하지만 그 역시 유건명의 손에 목숨을 뺏긴다. 자신의 과거를 아는 이들을 모두 제거한 유건명에게는 이제 출세의 탄탄대로만 놓인 듯 보인다.

하지만 유건명은 그 거침없는 출세가도를 내달리면서도 마냥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삶을 깨끗하게 ‘리셋’하기에는 한참 멀리 와버렸고, 매일 밤 편히 두 다리 뻗고 자기에는 손에 너무 많은 피를 묻혔기 때문이다. 비록 육신은 이 땅에 있으나 마치 ‘무간지옥’에 떨어진 듯 그는 불안과 죄책감으로 영원히 고통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글·사진(홍콩)=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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