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최근 총선에서 이스탄불 시장의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집요하게 뒤집기를 압박한 끝에 결국 야당이 승리한 지 20일 만에 재선거 결정을 이끌어냈다. 최근 대통령중심제로 권력구조를 개편하며 강력한 권한을 틀어쥔 에르도안의 터키 민주주의 훼손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리라화 가치도 급락했다.
6일(현지시간) 터키 최고선거위원회는 지난 3월 말 치러진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 공무원 중 개표감시위원을 선정하도록 한 선거관계법령을 위반한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며 선거 결과를 무효로 결정하고 다음달 23일 재선거를 명령했다.
이미 재검표·재개표를 거쳐 지난달 17일에야 당선증을 받은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 소속의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은 당선이 확정된 지 20일도 안 돼 시장직을 박탈당했다. 그는 “선거위가 집권당의 영향력 아래서 재선거 결정을 내렸다”며 “우리가 이긴 선거를 빼앗으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CHP는 7일 긴급회의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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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모을루 후보는 앞서 3월 말 진행된 선거에서 집권 정의개발당(AKP) 소속 비날리 이을드름 전 총리를 0.2%포인트 차로 꺾고 승리했다. 그러나 이스탄불이 정치적 고향인 에르도안 대통령은 결과에 불복하고 집요한 뒤집기에 나섰다. 그는 “선거에서 조직적인 부정이 벌어진 게 명백하다”며 노골적으로 선거위에 재선거를 압박했다. 이에 이스탄불 검찰과 경찰은 대대적인 선거부정 수사에 착수, 100명이 넘는 투·개표감시위원을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이번 재선거 결정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자 터키 리라화 가치가 급락하는 등 외환시장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날 미 달러화 대비 리라화 가치는 전날보다 2.4% 넘게 하락했다. 블룸버그는 리라화 추가 하락이 이미 중앙은행 목표의 4배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에 더 큰 압박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위의 결정은 에르도안 치하의 터키가 민주주의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실제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에 반대해온 카티 피리 유럽의회 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이번 결정은 선거를 통한 터키의 민주적 권력교체에 대한 신뢰를 끝장냈다”고 비판했다. 워싱턴DC 중동연구소의 고눌 툴 터키연구센터 소장도 “에르도안의 재선거 압박은 이미 그의 리더십 스타일에 좌절한 젊은 중산층 유권자들을 더욱 멀어지게 할 것”이라며 “이번 선거에서도 패한다면 그의 이미지는 산산조각날 것이고 이겨도 진정한 승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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