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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Why] 괴담·反백신 포퓰리즘…선진국서도 '홍역' 창궐

■전염병과 전쟁 중인 전세계
SNS서 "백신, 자폐증 유발시켜"
과학 입증 안된 허위사실 유포탓
전세계 백신접종률 85%서 답보
美 환자수 25년 만에 최다 수준
伊·그리스 등 포퓰리즘 정당들
反기득권 정서 환기 정치셈법에
"의무접종법은 개인 자유 침해"
유럽 42國 3만4,300여명 발병

  • 노현섭 기자
  • 2019-05-10 17:05:47
  • 정치·사회
[글로벌 Why]  괴담·反백신 포퓰리즘…선진국서도 '홍역' 창궐

전근대적 질병이자 ‘후진국 질병’으로 불리는 홍역이 지난해 이후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을 휩쓸면서 전 세계에 때아닌 홍역 비상이 걸렸다. 유럽에서는 이미 13명이 홍역으로 사망했으며 미국도 올 초 이후 발생한 홍역 환자 수가 무려 700여명에 달하면서 일부 대도시가 공공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홍역 확산에 대한 공포감이 극대화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유럽 42개국에서 올해 2월까지 발생한 홍역 환자 수는 3만4,300여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13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된 상태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미국 전역에서 올 들어 764명이 홍역에 걸렸고 환자 수는 계속 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는 963명의 홍역 발병이 보고됐던 지난 1994년 이후 25년 만에 가장 많은 수준이다.

이미 수십년 전 ‘박멸’을 선언한 의료 선진국들에 홍역이 다시 돌아온 것은 낮아진 백신 접종률 때문이다. WHO에 따르면 과거 90% 이상을 꾸준히 유지했던 홍역 백신 접종률은 최근 들어 85% 선에서 정체돼 있다.

미국의 최대 홍역 발병지 중 하나인 뉴욕주 록랜드카운티의 경우 18세 이하 미성년자의 홍역 백신 접종률은 73%에 그친다. 지난 3일 현재 이 카운티에서 발생한 214명의 홍역 확진 환자 중 79.7%는 백신을 단 한 번도 맞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저개발국가의 경우 낙후한 경제사정으로 접종률이 낮지만 선진국의 접종률 감소는 오히려 발달한 기술과 정치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SNS 등의 발달로 백신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급격히 퍼지면서 접종을 거부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다 정치적으로는 포퓰리즘 정부가 국가 주도의 의무적 백신접종 제도에 ‘정부와 제약사가 만든 기득권’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면서 반(反)백신 운동이 탄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백신에 낙태한 태아 세포는 물론 원숭이와 쥐·돼지의 DNA도 포함돼 있다”는 허위정보가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을 통해 퍼지면서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 이번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뉴욕시의 경우 급진정통파 유대인공동체를 중심으로 괴담이 번지면서 홍역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백신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특히 정통 유대교도들을 자극하고 있다”며 “유대교 율법에 따르면 되새김질하는 위와 발굽을 가진 짐승만 먹을 수 있지만 백신에 되새김 위가 없는 돼지가 포함돼 있다는 허위사실이 백신을 강하게 거부하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홍역 환자가 늘어나자 뉴욕시는 공공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정통 유대교도가 사는 브루클린 일부 지역에 강제 백신 접종 명령을 내렸다. 이를 거부할 경우 최고 1,000달러(약 114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그럼에도 이 지역 정통 유대교도들은 백신 접종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어 홍역 확산에 브레이크를 걸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치권도 공포심을 키우는 데 일조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홍역 사태가 심상치 않게 전개되자 지난달 말 “반드시 백신을 맞아야 한다”며 백신 접종을 독려했지만 앞서 지난 대선 기간에 “두 살 정도의 아기가 백신을 맞은 뒤 고열에 시달리다 결국 자폐증에 걸렸다”고 말하는 등 그동안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30차례 이상 백신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드러내왔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LA타임스는 “30년 전 홍역 발생은 백신에 접근하기 어려웠기 때문이고 오늘날의 홍역은 백신에 대한 잘못된 정보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럽에서도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백신 의무접종 제도에 개인 자유 침해나 국가 주도의 강압적 기득권이라는 틀을 씌운 반백신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이 정권을 잡은 이탈리아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더욱 명확하다.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는 “백신은 쓸모없고 위험성이 많다”고 주장하고 있고 오성운동 소속의 한 의원은 선거기간 중 “국가가 지원하는 백신 접종은 ‘공짜 학살(free genocide)’”이라면서 대중을 선동하기도 했다.

정권을 잡은 이들은 실제로 보건장관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보건자문위원 30명을 해촉하며 백신 의무접종 기준을 완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의료계와 학교들이 거세게 반발하는데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탈리아 내 홍역 감염자가 급격히 늘자 기존 방침을 철회하고 백신 접종 의무화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탈리아 포퓰리즘 정부가 발병 예방보다 집권이 가능하게 반(反)기성층 정서에 대한 호소를 더 중시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탈리아의 비영리단체 로바치노의 회원이자 전염병 전문의인 스테파노 조나는 “포퓰리즘 정부는 백신 의무 접종법이 개인 자유 침해라고 여긴 사람들의 표를 원했다”고 지적했다.

포퓰리즘의 부상과 홍역 창궐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연구보고서도 나왔다. 최근 유럽 공중보건저널에 소개된 논문에 따르면 이탈리아·그리스·프랑스 등 의무 예방접종 제도에 반대하는 포퓰리즘 정당이 득세하는 국가에서 홍역 환자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을 쓴 퀸메리대의 조너선 케네디 교수는 “과학적 포퓰리즘은 정치적 포퓰리즘과 유사하게 엘리트와 전문가에 대한 깊은 불신과 이로 인한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에 기인한다”고 강조했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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