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부작용을 메우려고 국가채무비율 마지노선을 이렇게 허무하게 내줘도 되는 겁니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전직 관료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재정 관료들이 가장 신경 써 관리해온 지표다. 경상수지·단기외채비율 같은 지표도 있지만 국가채무비율은 외국인투자가들이 우리의 재정 건전성을 판단할 때 참고하는 대표적인 지표여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 16일 대통령 주재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채무비율 40%’를 언급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심리적 저항선’인 채무비율이 40%를 넘어서는 것을 ‘일시적’이라며 넘길 문제가 아니다. 수출부진으로 83개월 연속 흑자인 경상수지의 적자전환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재정 건전성 악화는 우리에 대한 외국인투자가의 시각을 확 바꿔놓을 수 있다. 차관을 지낸 한 전직 관료는 “우리나라가 환란을 조기에 극복한 것은 재정 건전성이 양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113%, 미국은 107%’라는 확장재정의 명분은 얼핏 그럴싸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미 달러는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기축통화다. 위기가 닥칠 경우 달러를 찍어내면 그만이다. 미국과 단순 비교해 “재정 여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차이를 의도적으로 외면했거나 아니면 무책임한 것이다.
채무비율 상승 속도도 제어하기 어렵다. 2000~2016년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증가율(11.6%)은 OECD 35개국 가운데 네 번째로 높다.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저출산·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재정의 씀씀이를 조절해야 할 때다. 사회안전망 확충과 경기부양을 위해 국가채무비율 40%를 넘어서더라도 국민개세주의 등 세입 기반 확대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막대한 돈을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 쏟아부었지만 정작 국민소득은 줄어드는 상황에서 채무비율 마지노선을 무너뜨리겠다는 정부의 논리가 먹혀들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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