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일 북한을 방문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7일 일본 오사카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혈맹으로 평가받는 북중관계를 고려하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고 싶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메시지가 시 주석을 통해 문 대통령에게 전달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시 주석은 29일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이 같은 김 위원장의 뜻을 전할 것으로 보인다.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협상을 풀기 위해 시 주석이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을 만난 소회를 밝히며 “(김 위원장은) 한국과 화해협력을 추진할 용의가 있으며 한반도에서의 대화 추세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뜻을 전함과 동시에 한반도 정세에 대한 시 주석의 견해를 밝힌 것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시 주석은 또 “(김 위원장은) 새로운 전략적 노선에 따른 경제발전과 민생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외부환경이 개선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는 외부 환경 변화, 즉 제재 완화가 수반돼야 한다는 중국의 입장을 완곡하게 드러낸 것으로도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시 주석과 김 위원장과의 회담, 북미 친서 교환 등은 북미 대화의 모멘텀을 높였다고 생각한다”며 “북미 간 조속한 대화가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이에 대해 “북미 양측이 유연성을 보여 이를 통해 대화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언급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한중 정상은 이날 미중 무역분쟁 등 경제 현안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논의를 나눴다. 문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은 한국에 있어 1·2위 교역국으로 모두 중요하다”며 “어느 한 나라를 선택하는 상황에 이르지 않기를 바라며 원만히 해결되기를 희망한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양 정상이) 화웨이 관련 문제를 꼭 집어 언급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이에 대해 “다자무역은 양국의 이익뿐 아니라 세계 이익과 직결돼 있다”며 “일시적 타결이 아니라 이런 원칙 아래 긴밀히 협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국 관계에 매우 민감한 이슈로 작용했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에 대해서도 양 정상은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눴다. 시 주석은 사드 문제를 먼저 꺼내며 “해결방안이 검토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문 대통령은 “그렇기 때문에 비핵화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답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언급은 사드에 앞서 비핵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두 사안이 같이 연동될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양 정상은 아울러 미세먼지 등 대기환경 문제에 대한 의견도 교환했다. 시 주석은 “중국은 환경보호에 대해 (예전보다) 10배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적극 협력해나가겠다”고 말했고 문 대통령은 “양 정부가 함께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중국이 앞선 경험과 기술을 갖고 있는 만큼 미세먼지 해결에 함께 협력해나가자고 강조했다. 양 정상은 아울러 시 주석의 방한과 관련, 양국 외교 채널을 통해 긴밀히 협의해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문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회담에 이어 28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회담을 갖고 북한 비핵화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푸틴 대통령 역시 최근 김 위원장과 북러정상회담을 가진 바 있어 김 위원장의 의중을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중러 정상과의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29~30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북미 협상 재개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관측된다. 문 대통령은 앞서 “북미 간 3차 정상회담에 관한 물밑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한일관계가 매우 예민한 상황 속에 문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면서 의전과 관련한 해프닝도 발생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간사이공항 도착 후 비가 오는 날씨 속에 우산을 쓴 채 지붕이 없는 트랩을 걸어 내려와 일각에서 ‘한국 홀대론’이 제기된 것이다. 시 주석과 일부 정상들이 도착했을 때는 지붕이 있는 트랩이 설치됐다. 청와대는 그러나 “공항 도착 시 개방형 트랩을 설치한 것은 사진취재 편의 등을 고려한 우리 측의 선택”이라면서 “비를 좀 맞더라도 환영 나오신 분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오사카=윤홍우기자 양지윤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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