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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여성리더 전성시대'…정치·경제 거느리는 女心

여성 최초의 EU(유럽연합) 집행위원장으로 지명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왼쪽) 독일 국방장관과 장클로드 융커 현 EU 집행위원장. /로이터연합뉴스




“여성의 유럽이 됐다”

도날드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EU 지도부 인선 결과가 발표된 이후 이 같은 표현으로 결과를 압축했다. 막판까지 EU 회원국 간 ‘힘겨루기’로 진통을 겪었던 EU 지도부 인선 작업은 지난 2일(현지시간) 마무리됐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유럽중앙은행(ECB) 차기 총재로 내정된 것에 이어, EU 집행위원장 후보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독일 국방장관이 올랐다. 60여 년 넘게 남성 위주였던 EU에 그야말로 ‘여풍(女風)’이 불어닥친 셈이다. 아직 이달 중 유럽의회에서 진행되는 인준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의원 751명의 과반 찬성을 얻으면 오는 11월 1일 취임하게 된다.

라가르드 ECB 총재 지명자와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후보 모두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남성 지배 문화에 금을 내고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공통점이 있다. 폰데어라이엔 독일 국방장관은 첫 여성 국방장관이었다. 군 경력은 전무 하지만 18만 명에 이르는 독일군의 평시 작전통제권을 쥐고 있었던 인물이다. 그는 42세에 정계에 입문한 산부인과 의사 출신의 늦깎이 정치인이다.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이후 하노버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그는 정계에 진출하기 전까지 산부인과 의사로 일했다. 보수 정당인 독일 기독민주당(CDU) 소속의 정치인으로 활약하면서 일과 가정의 양립 가능성을 몸소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그는 의대 교수이자 기업 대표인 남편 하이코 폰데어라이엔과의 사이에 무려 7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평균 출산율이 1.5명인 독일에서 7명의 아이를 낳고도 그야말로 ‘멀티태스커(여러 이을 동시에 하는 이)’가 돼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거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 됐다.

산부인과 의사가 ‘정치’라는 새 도전에 나서게 된 배경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덕도 컸다. 2005년 집권한 메르켈 총리는 폰데어라이엔을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임명한데 이어 노동장관을 거쳐 2013년에는 국방장관까지 앉혔다. 폰데어라이엔은 메르켈 내각에 내내 머문 유일무이한 장관이기도 하다.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후보는 장관으로 일하면서 여성의 관점에서 정책을 추진할 때가 많았다. 아이 7명을 키우며 자신의 업(業)을 해내면서 겪은 세세한 고충을 정책에 십분 반영했다.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재직할 때 출산과 육아 지원 정책을 대폭 강화했다. 2009년 육아휴직을 사용한 여성에게 급여의 67%를 보조하는 정책을 추진해 큰 지지를 받았다. 재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출산이 늘어야 경제가 산다”고 밀어붙여 ‘저출산 파이터’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이후 남성에게도 2개월의 유급 육아 휴가제를 도입했다. ‘아동 포르노와의 전쟁’을 선포해 인터넷 검열을 강화했고 국방장관에 오른 뒤에는 군인이 자녀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다.



폰데어라이엔 국방장관이 EU 집행위원장에 공식적으로 취임하게 된다는 그의 당면 과제는 비단 여성과 가족 등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와 이란 위기, 기후 변화, 이민 문제 등 갖가지 주요 현안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 뉴욕타임스(NYT)는 “폰데어라이엔 장관은 ‘통합된 유럽’을 지향하고 있다”면서 “헝가리와 폴란드 등이 자국을 EU보다 우선순위로 두기를 원하는 가운데, EU 내에 유럽 통합에 대한 열의를 불러일으킬 것 같다”고 전했다.

차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로 지명된 프랑스 출신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블룸버그통신


차기 ECB 총재로 지명된 프랑스 출신의 라가르드 IMF 총재는 이미 여러 차례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은 적이 있는 인물이다. 유독 관운이 빼어난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라가르드 총재는 1946년 프랑스 파리의 교육자 집안에서 3남 1녀의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학의 영어 교수였고 어머니 역시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교사였다. 열일곱 살 때 부친이 사망하는 아픔을 겪었다. 라가르드의 경력은 이채롭다. 10대 시절 프랑스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대표를 지냈고 대학입학 자격시험(바칼로레아)을 본 뒤 장학금을 받고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의 홀론-암스 스쿨을 다녔다. 이후 파리10대학 로스쿨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1년 미국 시카고 기반 대형 로펌인 베이커 앤드 맥켄지(Baker and McKenzie)에 입사해 반(反)독점법과 노동 사건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 6년 만에 파트너로 승진했다. 1995년 이사가 된 뒤 1999년 로펌 사상 첫 여성 최고경영자가 됐다. 관계에 입문한 뒤 상무장관(2005~2007년), 농업장관(2007), 재무장관(2007)에 잇따라 임명되는 등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자국인 프랑스는 물론 주요 7개국(G7) 최초의 여성 재무장관이었다.

그의 ‘최초’ 독주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1년에는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IMF 총재에 임명되기도 했다. 그가 ‘사상 첫 여성 IMF 총재’가 된 계기는 전임자인 스트로스 칸의 성추행 사건이다. 2011년 뉴욕을 방문한 스트로스 칸이 호텔 웨이트리스를 성추행한 혐의로 체포되는 등 성추문으로 낙마하자 ‘구원 투수’로 나섰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제 ECB 차기 수장으로 지명되며 다시금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재무장관과 IMF 총재로 8년간 재임하는 등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통화정책 수장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지에는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다수는 그의 ‘부드러운 협상력’에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 당시 유럽 각국의 입장을 조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IMF 총재로 일하며 중남미 경제 위기 등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는 등 제 몫을 해 온 만큼 ECB 총재로서 그를 향한 기대감은 크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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