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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톺아보기]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촉발한 ‘자영업의 정치화’

'최저임금 규모별 차등화' 주장하는 소상공인聯과 달리

한상총련 "유통수수료 개선 통해 자영업·노동자 상생해야"

최저임금 두고 소상공인·자영업계 두 단체 '엇갈린 해법'

'정부 정책에 대한 지지수준'에 따라 정치적 이견 내비춰

지난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실에 2020년 적용 최저임금안 투표 결과가 나타났다. 내년도 최저임금으로는 8,590원이 15표를 얻어 채택됐다./연합뉴스




내년도 최저임금이 2.9% 오른 8,590원으로 결정된 직후 두 소상공인 단체가 각기 다른 내용을 담은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최저임금 규모별 차등적용이 고려되지 않은 결정”이라며 즉각 반발했습니다. 반면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한상총련)는 “현장 중소상인과 자영업자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 고려된 결정으로 이해한다”며 환영했습니다.

해결책도 다릅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2년간 30% 가까이 오른 최저임금 부담부터 덜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아예 정부를 상대로 장외투쟁에 나설 계획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상총련은 유통대기업·프랜차이즈의 불공정거래 개선, 제로페이 확대 등을 통해 최저임금 인상분을 보전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상총련은 지난달 17일 민주·한국노총과 함께 ‘역지사지 간담회’를 열고 “불공정한 시장환경을 놔두고 최저임금만을 탓하는 행위를 규탄한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을 두고 소상공인·자영업계에서 ‘담론 경쟁’이 벌어지는 모습입니다. 전제조건은 같습니다. 우선 ‘소상공인·자영업자가 먹고 살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문제의식입니다. 또 하나는 ‘사업주와 근로자가 상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해결책은 ‘최저임금 차등적용’과 ‘공정경제 강화’로 갈리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소상공인·자영업자’라는 경제 영역에서 ‘정치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일차적으로는 정부 정책에 대한 ‘동의 수준’에서 뚜렷한 이견이 노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론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가장 우선시되는 이익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이 같은 ‘담론 경쟁’에 방아쇠를 당긴 것으로 풀이됩니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동작구 중소기업연구원 대강당에서 열린 ‘소상공인연합회 2019년도 제1차 임시총회 및 업종·지역 특별 연석회의’에서 참석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최저임금 규모별 차등적용을 촉구하고 있다./연합뉴스


◇‘정치세력화’ 요구 빗발친 소상공인연합회 임시총회

우선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중소기업연구원 지하대강당에서 열린 ‘소상공인연합회 임시총회’로 눈을 돌려보죠. 이날 총회에선 이례적으로 소상공인 단체장 사이에서 “소상공인이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 빗발쳤습니다.

이날 총회가 열린 이유는 소상공인연합회가 요구하던 ‘최저임금 규모별 차등적용’이나 ‘최저임금 고시 월환산액 삭제’ 등이 지난달 26일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부결됐기 때문입니다. ‘최저임금 부담 경감’을 소상공인의 최우선 해결과제로 ‘정치 공론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 배경입니다. 결과적으로 소상공인연합회는 ‘정치 관여 금지 조항’을 삭제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포문은 이근재 소상공인연합회 부회장이 열었습니다. 그는 “민주노총은 우리나라 최고의 무소불위 정치세력”이라며 “소상공인도 민주노총처럼 정치 세력화돼야 힘이 생기지 않겠나”라고 했습니다. 노조와 달리 소상공인들이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결과 정부가 최저임금 규모별 차등적용 등을 묵살했다는 주장입니다.

‘총선 보이콧’, ‘창당론’ 등의 요구도 나왔습니다. 유덕현 소상공인연합회 서울시협의회장은 “우리 대한민국에선 아직까지 떼법이 통한다”며 “내년도 총선에서 700만 소상공인이 선거를 보이콧하는 캠페인을 벌여 소상공인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자”고 주장했습니다. 윤창원 여주시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우리가 정당을 만들면 5~7명은 비례대표로 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소상공인 정당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의견을 반영해 소상공인연합회는 정관에 기록된 ‘정치 관여 금지 조항’을 삭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우리 스스로 족쇄를 채운 정치 관여 금지 조항에 대한 정관을 개정하겠다”고 매듭지었습니다. 법정 경제단체가 이처럼 ‘정관’을 바꾸면서까지 정치 참여를 공식화한 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아울러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여부와 상관없이 각 지방·업종별 소상공인 단체들이 최저임금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대정부 규탄대회’를 열기로도 합의했습니다.

◇“유통수수료 개선으로 최저임금 인상 보전 가능”

반면 한상총련에서는 ‘최저임금 차등적용’ 대신 대기업 중심 유통구조 개선, 임차인 보호 등 ‘공정경제’를 화두로 들고 나왔습니다. ‘최저임금’에서 경영난 원인을 찾는 행태가 근로자와 자영업자 사이의 ‘을을 갈등’만 촉발할 거라는 의미입니다. 오히려 ‘지대’를 추구하는 대기업에 저항해 유통구조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입니다.

한상총련은 지난달 17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노동자·중소상인 역지사지 간담회’를 열고 “불공정 경제구조와 재벌체제 개혁을 위해 손을 맞잡자”고 선언했습니다. 이날 간담회에는 한상총련을 비롯해 참여연대, 민주노총, 한국노총, 청년유니온 등의 단체가 참석했습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정치세력화’를 거론하며 최저임금 차등적용이라는 담론을 꺼낸 반면, 한상총련은 ‘진보연대’를 통해 공정경제 담론을 끌고 나가는 모양새입니다.



이날 한상총련이 내세운 안을 요약하면 ‘유통대기업의 지대추구행위를 억제하면 최저임금 인상도 감내하고 자영업자·근로자의 상생을 추구할 수 있다’입니다. 이에 우선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통해 복합쇼핑몰 출점을 규제하자고 제시했습니다. 또한 가맹점주 단체교섭권 강화를 통한 △로열티 등 불공정 가맹수수료 재분배 △가맹점주 최저수익 보장제도 마련 △무분별한 출점 제한을 통한 가맹점주 보호도 주장했습니다.

대형마트·백화점·온라인몰의 수수료 체계를 개선하자는 안도 내놓았습니다. 가령 홈쇼핑이나 백화점에서 구두 한 켤레가 팔리는 경우 그 판매대금의 40% 이상이 대형유통점의 판매수수료로 넘어갑니다. 이 수수료를 줄이면 제화공과 하청업체가 받는 수익이 늘어날 수 있을 거라는 게 한상총련의 설명입니다. 아울러 수수료가 높은 신용카드 대신 제로페이와 지역상품권 결제를 늘려나가자는 방안도 꺼냈습니다.

지난달 10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김주영(왼쪽 세번째부터) 한국노총 위원장, 박원순 서울시장, 방기홍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장이 ‘제로페이 활성화와 경제민주화 추진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업무협약서를 함께 들고 있다./연합뉴스


◇두 개의 상생론

주목할 점은 소상공인연합회도 ‘근로자 상생’을 최저임금 규모별 차등적용을 위한 명분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소상공인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으니,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야 근로자의 ‘생계’도 보장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5월 29일 발표한 ‘최저임금 관련 근로자 실태조사’를 예로 듭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영세사업장 근로자 중 61.2%가 ‘최저임금 상승으로 일자리 변화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변했습니다. 특히 그 이유로 ‘사업장의 경기 악화 및 폐업 고려(34.5%)’와 ‘근로시간 단축(31%)’, ‘해고 및 이직의 압박(20.6%)’가 많이 꼽혔습니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소상공인들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규모를 줄이거나 폐업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 근로자들도 소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부담을 크게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비용 최소화냐 분배냐’라는 전통적인 논쟁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입니다. 보통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인위적인 분배 정책이 오히려 고용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기업의 비용 최소화가 수반돼야 노동시장도 균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분배를 강조하는 입장에선 시장을 방치하면 불평등이 강화한다고 주장합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전자라면, 한상총련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소상공인·자영업자의 핵심 이익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자영업계의 ‘정치화’에 계기를 마련한 게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를 기점으로 최저임금의 ‘변화량’이 커지며 소상공인의 이해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최저임금 차등적용 등 기존에는 없었던 요구사항도 공론화되고 있는 배경입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서경펠로)는 “과거에는 소상공인들이 최저임금을 지불해도 자율성이 있었지만, 정부가 최저임금 수준을 높이는 과정에서 이들의 자율성이 낮아졌다”며 “여기서 정부가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겨나고 (정책 대상자 사이에서) 관련 경험이 공유되며 하나의 정치 어젠다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를 ‘정치화’라고 부를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최저임금 정책에 대한 ‘동의수준’에서 차이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정부 정책 기조에 반대하는 반면, 한상총련은 비교적 동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당장 소상공인·자영업계에서 정부 정책을 둘러싼 ‘전선’이 형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소상공인·자영업자의 핵심 이익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으로 귀결됩니다. 현재로서는 ‘당장 먹고 살 문제(최저임금 차등적용)’와 ‘장기적인 해법(유통구조 개선)’으로 이견이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서경펠로)는 “최저임금 이슈에 대해 정부를 이해하는 쪽과 정부를 이해하지 못하는 쪽으로 의견이 나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를 이해하지 못하는 쪽에서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얘기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다만 이를 전형적인 ‘좌·우파 갈등’으로 보긴 힘들다는 게 신 교수의 분석입니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이슈는 ‘성장이냐 분배냐’가 아닌 ‘생존’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입장에선 최저임금 규모별 차등적용을 주장하는 쪽이 좀 더 와 닿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지난 10일 소상공인연합회 비상총회에서 제기됐던 것처럼 ‘소상공인 정당’이 꾸려질 가능성도 낮다고 점쳐집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당은 대부분 ‘대중정당’을 지향하고 있어 오히려 소상공인의 ‘독자적인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만들었다가는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소상공인·자영업자의 ‘계급 정체성’도 모호합니다. 신 교수는 “전통적으로 소상공인·자영업자는 쁘띠부르주아로 분류된다”며 “그러나 쁘띠부르주아도 결국엔 부르주아기 때문에 계급 구도에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내세우긴 쉽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교수도 “계급 정체성은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며 “이들이 독자적인 계급 집단으로 부상할지는 두고 봐야 하지 싶다”고 전망했습니다.

이에 당분간은 소상공인·자영업계 이익집단 단위에서 최저임금 이슈에 관한 이익을 표출하고, 이를 각 정당이 포착해 자신들의 정책 프로그램에 반영하는 방향으로 정치과정이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치학계 교수들의 설명입니다. 신 교수는 “향후 최저임금 차등적용과 공정경제를 강조하는 진영 중에서 어느 곳이 더 설득력을 발휘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짚었습니다.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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