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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中만리장성박물관에 ‘한국’은 없다

최수문 베이징특파원





중국의 만리장성 유적 가운데 관광객이 가장 많은 베이징 팔달령장성에는 ‘중국장성박물관’이 있다. 중국 내 최대규모로 만리장성 관련 역사유물을 모아놓은 곳이다. 지난주 이곳에 들렀다가 불편한 상황에 부딪혔다. ‘요녕단동(랴오닝단둥)호산명대장성’이라는 사진의 설명을 보니 ‘호산성’이 명나라 시기 만리장성의 동쪽 기점 역할을 했다는 게 아닌가.

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이른바 호산성 지역은 고구려 성곽인 박작성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압록강 북쪽에 붙은 박작성은 고구려 수도인 국내성을 방어하는 핵심 시설이었다. 때문에 성벽도 견고했고 오래 견뎠을 것이다. 이후 만주가 중국령이 되면서 고구려성은 중국성으로 전락했다. 만일 호산성이 장성의 역할을 했다면 반드시 주위의 다른 성으로 성벽이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호산성에서 뻗어 나간 성벽을 발견하지 못했다. 현재 성곽은 현대 중국풍으로 대대적으로 수리된 것이다. 유적이 중국 영토에 있어 한국의 학자들은 변변히 항의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만리장성박물관에서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은 이것뿐이 아니다. 박물관에는 만리장성과 관련한 네 종류의 중국 역사지도가 있다. 앞선 시기부터 진·한·남북조(북주)·명나라 지도다. 이 중 전체 지도가 게시된 진·한·북주의 만리장성은 터무니없이 북쪽으로 올라가 만주까지 이어진 것으로 돼 있는데 정작 조선·고구려의 이름이 없다. 대신 선비족이나 거란족이 만주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더 기이한 것은 명나라 시기의 지도다. 현재 중국 북부지방에 남아 있는 만리장성 유적은 명나라 때 몽골·만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든 것이다. 명나라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허베이성 친황다오의 ‘산해관’이다. 산해관에 붙은 ‘천하제일관’ 현판은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호산성이 만리장성 동쪽 끝이라고 주장하는 박물관 측으로서는 명나라 시기의 장성을 곧이곧대로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박물관에 보관된 명나라 시기의 만리장성 지도에는 베이징 인근 부분만 나온다.

중국 중앙방송(CCTV)에서 방영하는 ‘백가강단’ 가운데 최근 나온 ‘수·당나라 흥망’ 프로그램도 논란거리다. 중국 내 한 대학의 고대사 교수가 수·당의 역사를 재미있게 풀이한 이 프로그램에서 첫 시간은 ‘수나라의 건국과 멸망, 당나라의 성장’에 할애됐다. 수나라 왕조가 39년 만에 멸망한 것은 ‘살수대첩’ 등 고구려원정 실패에서 비롯된 것은 중국 역사학계에서도 인정한다. 그런데 이 강의에서 고구려라는 이름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교수는 수나라의 고구려침략에서 목적어는 빼고 ‘요동원정’이라고만 했다. 새로운 형태의 왜곡 시도인 셈이다.



한국 관련 역사적 사실에 대한 중국의 왜곡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강원도 화천군·양구군에 있는 파로호의 이름을 바꾸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파로호는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는 이름으로 한국전쟁 때 국군이 중공군 대군을 격파한 곳이다. 오랑캐라는 호칭을 중국인관광객(유커)들이 싫어한다는 것이 중국 측 주장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보면 지난 2017년 4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 플로리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전해지는 “역사적으로 한국(Korea)은 중국의 일부(a part of China)였다”는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커진다. 적지 않는 중국인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중국 정부나 방송에서 과거 중공군의 한국전쟁 참전을 ‘항미원조’ 이미지로 띄우는 것도 섬뜩하다. 중국인들로서는 과거 미국에 맞서 실제 전투를 벌인 것처럼 무역전쟁에서도 굴복하자는 의미겠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침략전쟁에 대한 미화에 다름 아니다.

한중 관계가 어려워지는 것에는 중국의 역사 왜곡이 주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아쉽게도 우리 정부가 이러한 역사 왜곡에 엄중히 항의를 했다거나 시정을 요구한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에서도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서는 촉각을 세우는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감각하다.

역사 왜곡 측면에서는 일본보다 중국이 미치는 악영향이 더 크다. 중국의 경제력·정치력이 성장하면서 대외적인 파급력이 점점 확대되기 때문이다. 역사에도 상호존중과 상호주의 원칙이 필요하다. /chsm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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