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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자사고 정책, 절제·균형이 필요하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교육학
비전 제시도 않고 폐지절차
8학군 쏠림·한지붕 두학교 등
현장 충격 최소화할 준비 부족
충분한 소통없는 평가도 아쉬워
수월성·형평성 교육 조화 찾아야

  • 2019-07-18 17:38:31
  • 사외칼럼
[시론] 자사고 정책, 절제·균형이 필요하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 교수

이달 10일 서울교육청을 끝으로 24개 자율형 사립고(자사고)에 대한 재지정 평가가 완료됐다. 상산고를 비롯해 11개교가 지정 취소 통보를 받았다. 서울에서만 8개교가 탈락했다. 고교교육 다양화와 특성화라는 취지를 벗어난 입시 위주 교육과정 운영이 주된 이유라 한다. 대학 간판이 인생을 좌우하는 사회에서 대학 잘 가라고 준비시키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사고가 누려온 예외적 대우는 단순히 입시명문학교를 만들라고 부여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일부 언론에 보도된 ‘서울 자사고 연합회’의 비교육적 홍보 문구는 국민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고, 건강한 자사고도 도매금으로 욕 먹게 만들었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최근 교육 당국이 보여준 일련의 자사고 정책은 실망과 아쉬움을 남긴다.

우선 정책의 순서가 뒤바뀌었다. 먼저 고교 체제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줬어야 했다. 교육의 수월성과 형평성을 조화시킬 방안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하면서 차근차근 추진하는 것이 순리다. 미래 교육 비전에 대한 합의 없이 자사고만 덜컥 폐지하겠다는 대증적 처방은 교육의 엉킨 실타래를 더욱 꼬이게 할 뿐이다.

체계적 준비도 부족했다. 모든 정책은 빛과 그림자가 있다. 민사고, 상산고처럼 20년 넘게 운영된 자사고가 공교육에 남긴 성과와 한계가 무엇인지 면밀히 분석하고 국민에게 알리는 절차가 미비했다. ‘강남 8학군’을 중심으로 ‘풍선효과’를 예상하는데 사전에 충분히 검토했는지 묻고 싶다. 자사고 폐지와 일반고 경쟁력 강화는 동전의 양면이다. 미리 일반고 대책을 수립했다면, 국민은 걱정을 덜었을 것이다. 또 외고와 국제고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일반고로 전환되는 학교에는 일반고 학생과 자사고 학생들이 함께 다니게 될 텐데 한 지붕 두 가족을 어떻게 끌고 갈지 궁금하다. 교육 제도를 바꾸려면, 충분한 조사와 연구, 공청회와 의견 수렴, 정교한 시뮬레이션까지 일련의 정책 과정을 충실히 거쳐야 한다. 학생과 국가의 미래가 걸린 교육 정책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고, 다소 느릴지라도 차분히 따져보며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법령 정비, 재정 지원, 대입 개편, 부동산 대책까지 정책 생태계를 살펴보고 현장 충격을 최소화하는 로드맵을 만들어 추진할 때 국민은 신뢰하고 그 정책에 따른다. 공약 이행과 가시적 성과 창출에 급급할수록 진정한 변화와 혁신은 멀어질 뿐이다.

평가 방식 역시 아쉬움이 남는다. 평가의 목적은 잘된 점과 개선할 점을 밝혀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래서 평가위원 전문성, 평가지표 타당성, 평가결과 공개가 중요하다. 비공개 평가를 하고 결과를 당락 판정에만 활용해서는 진정한 제도개선이 어렵거니와 결과에 대한 승복도 담보하지 못한다.

‘자사고 제도’의 존폐와 ‘문제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별개다. 토드 로즈 하버드대 교수는 그의 책 ‘평균의 종말(The end of average)’에서 모든 사람은 타고난 재능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평균의 함정’에 빠져 획일적 교육을 하는 우를 범한다고 지적한다.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아이, 운동 신경이 좋은 아이, 과학 재능이 특출한 아이를 예술고, 체육고, 과학고로 보내서 재능과 꿈이 더욱 꽃 피도록 돕는 것은 ‘평균의 함정’에 빠진 교육을 피하려는 조치다. 그렇다면 뛰어난 두뇌를 가진 미래 인재의 심화학습을 위한 학교는 필요 없을까. 자율과 창의로 실험적인 교육을 하고, 공립 혁신학교와 잘 가르치는 경쟁을 벌이는 사립학교가 있어도 좋을 것이다. 다양한 교육 수요를 무시하고, ‘일괄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극단적이고 교육적이지도 않다.

시대 정신은 시계추처럼 오간다. 지도자는 절제와 균형의 정신으로 숙고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잠시 권력을 맡은 사람이 오만과 독선에 빠지면 우리 미래는 어두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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