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정권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는 자유무역주의 국제 규범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으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사건이 어떻게 결말나건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일본의 행태에 대해 국제사회와 법정의 준엄한 심판이 있어야 한다.
이번 사건을 촉발한 직접적인 계기는 일제 하의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이다. 이와 관련 이미 원고들이 일본에서 제기했다가 패소 확정된 판결이 있다. 동일한 사안에 대한 일본 최고재판소와 우리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병존하고 있는 것이다. 차이는 일본의 판결은 한일합방의 합법성을 전제로 한 것이고 우리는 불법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미 2012년 5월 대법원 4인 재판부가 선고했던 판결의 취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판결의 타당성을 둘러싼 이견은 있지만 기왕 나온 판결이라면 존중해야 한다. 우리 국가의 자존심이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름 법리에 따라 역사적 해석까지 담아낸 것까지는 좋지만 판결 확정 후 집행 불능이 될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으므로 판결문에서 이에 대한 대안 제시도 했어야 했다. 무책임하고 현실 감각이 없었다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고, 우리 스스로 사법 주권을 손상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었음에도 사태가 여기까지 오도록 방치한 무책임과 무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어쨌건 지금은 대법원 판결의 권위와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으면서 한일 경제 갈등의 출구를 모색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원고들의 판결에 따른 채권을 국가가 나서서 양수해야 한다. 만일 판결까지 나온 채권을 일반 피해자들과 동일하게 취급하여 특별법으로 보상한다면 대법원 채무명의가 무효라는 걸 우리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되고, 판결은 논란만 일으킨 채 그 역사적 의미는 휴지 조각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처럼 삼권분립만 내세우며 오불관언하는 정부의 태도는 대외적으로 대법원 판결이 잘못되었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다분하다.
판결금 채권을 일반 채권처럼 국가가 양수하면 강제징용의 불법성에 대한 법원의 실체적 판단은 여전히 유효하게 남는다. 이는 일본 정부나 기업의 책임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도, 그 책임을 대신 떠안는 것도 아니다.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로 국민 개인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을 국가가 포기함으로써 판결에서 승소하고도 집행하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한 데 대한 국가의 당연한 의무를 이행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원고들의 채권을 인수함으로써 갖게 되는 국가의 대위청구권은 국가 간 청구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한일청구권 협정에 따라 해결하면 된다.
우려되는 바는 다른 피해자들이 배상을 요구하는 경우의 천문학적 재정 부담이다. 한일 청구권 협정 관련 문서가 모두 공개된 2005년 1월이 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이 될 수 있다는 2012년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살린다면 이 문제에 대한 해법도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사법적 논란은 이렇게 마무리 지어야 한다.
지금 와서 판결금 채권을 정부가 양수하는 상황이 우리가 일본의 공세에 다소 물러나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사실 이 일은 대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 우리 스스로 주도적으로 했어야만 했던 일이다. 진즉에 하지 못했던 무책임과 무능으로 체면을 좀 구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일본과의 향후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서라도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조치들을 더 이상 실기해서는 안 된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정부의 어정쩡한 모습은 그 효력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일본이 가장 원하는 것이다. 애국인지, 매국인지는 말이 아닌 행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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