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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창만필] 남아일언중천금

서구일 모델로피부과 원장

합의 파기 논란에 한일분쟁 격화

아베 작심하고 교묘한 보복 나서

국가간 조약 파기 페널티 따라붙어

'약속'의 위중함 다시한번 깨달아

서구일 모델로피부과 원장






필자는 현재 임차하고 있는 건물의 총 4개 층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병원이 여러 층으로 나뉘어 있다 보니 층간에 의사소통 문제도 있고 고객들의 층간 이동도 불편해서 바닥이 넓은 평수의 건물로 이전을 검토하게 됐다. 그런데 그 와중에 건물 소유 법인이 모기업에 흡수합병된다는 것이다. 변호사와 상의해보니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임대인이 바뀌면 임차인은 계약을 해지할 권리가 있다고 해서, 흡수합병이지만 법인이 다르기 때문에 임대인이 바뀐 것이라는 주장으로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 그러나 상법상 흡수합병의 경우는 권리·의무를 다 승계하기 때문에 임대인이 바뀐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법원의 판단으로 현재 필자가 패소한 상태다. 현 상황에서 나가려면 후임 임차인을 물색해 데려오든지 아니면 남은 기간의 임대료를 전부 내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계약의 위중함과 계약을 파기할 때는 페널티가 있다는 걸 다시 깨닫는 계기가 됐다.

최근 한일관계가 악화일로에 있다. 일본 정부가 우리 핵심 산업인 반도체 제조에 절대 필요한 불화수소 등 핵심 소재 수출을 규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당하게 대응하자며 이순신 장군의 12척 배가 아직 남아 있다는 말로 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고 조국 수석은 ‘애국’ 아니면 ‘친일’이라는 프레임까지 내세우고 있다. 언론도 연일 일본의 도발에 반발해 분노한 우리 국민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확산하고 있고 일본 내에서도 우리나라 관광객 감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사태가 이렇게까지 커지게 된 데에는 그간 우리 정부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위안부 문제 합의 파기와 강제 징용 개인 배상판결은 국가 간 조약 파기의 논란을 가져왔다. 위안부 배상문제는 2011년 헌법재판소의 ‘한국 정부가 위안부 배상청구권 관련 한일 간 분쟁에 나서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에 따라 2015년 박근혜 정부 때 양국 외무장관 명의로 합의안을 만들었다. 일본 정부로부터 10억엔을 받아 한국 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하고 피해 할머니들께 개인적인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로써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하기로 했다. 실제 2016년부터 상당수 피해자나 유족에게 1인당 1억원의 위로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이 합의가 잘못됐다며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고 양국 간 맺은 합의를 사실상 파기했다. 징용 배상 문제도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었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때 ‘향후 한일 양국과 그 국민은 어떤 청구권도 주장도 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작년 우리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이 재산상의 채권·채무만을 다루었지 ‘손해와 고통’에 따른 청구권 문제는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징용노무자의 정신적 피해에 대해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피해자들은 후속 조치로 일본기업의 한국 내 자산에 대한 매각절차를 시작했다. 대법원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하기는 힘들지만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대법원이 안이하게 판단했다는 비판은 면하기 힘들어 보인다.

일본에 살고 있는 지인들에 의하면 약속을 중시하는 일본인이 보기에 정권이 바뀌었다고 국가 간 약속을 파기하는 것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말한다. 손해 보는 약속이라도 약속은 지켜야 하고 지키지 못할 때는 페널티가 있다는 것은 개인 간에도 기본적인 룰인데 국가 간에는 더 말할 나위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래서 아베 정부가 작심하고 준비한 보복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도 걸리지 않는 ‘화이트 리스트’ 제외라는 교묘한 카드로 나타난 것이다. 징용 배상과 같은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 정부가 일본의 보복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말인지 궁금하다. 우리 뜻대로 밀고 나가도 별 불이익이 없다면 모르지만 우리가 그럴 힘이 있나. 우리의 영공을 중국, 러시아 전폭기가 날아다니고 북한은 미사일을 쏘아대는 상황에서 일본을 내쳐 우리가 얻는 게 정신승리 말고 무엇이 있을까. 남아일언은 중천금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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