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건담·슈퍼로봇 등 키덜트 상품을 제작하는 곳 중엔 해외 업체가 많습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키덜트 작품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회사가 별로 없어요. 제가 가이아코퍼레이션에 입사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국내 업체 중에도 키덜트 산업을 주도하는 회사가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던 거죠.”
엄대용(43·사진) 가이아코퍼레이션 차장은 30일 경기도 파주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최근 들어 밀리터리·로봇 등을 제작하던 전업 작가들이 콘텐츠 회사에 합류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며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업계에서 일할 수 있는 등용문이 더 열릴 수 있게끔 일선에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엄 차장은 원래 ‘댄디버드’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피규어 작가다. 그가 작가로 활동한 경력만 15년에 달한다. 특히 그가 유명세를 탔던 건 청룡거인·우뢰매·태권브이 등 각종 로봇을 리메이크하면서였다. 이를 ‘리파인(refine)’이라고 한다. 리파인은 ‘세련되게 하다’라는 뜻으로, 피규어 업계에선 옛 지식재산(IP)의 디자인을 현대적 시각에 맞춰 다듬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가이아코퍼레이션으로부터 ‘스카우트’를 받은 건 지난해 가을 즈음이었다. 유아용품·완구류를 주로 유통·제조하던 가이아코퍼레이션은 당시 ‘키덜트’ 시장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엄 차장 입장에선 괜찮은 제안이었다. 국내외 IP를 리메이크하려면 라이선싱이 필요한데, 작가 개인이 라이선스를 따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는 “회사 입장에선 제가 제작하는 제품을 통해, 저는 회사 단위에서 라이선스를 보다 용이하게 딸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이득”이라고 설명했다.
엄 차장을 영입한 가이아코퍼레이션은 ‘해머’라는 이름의 키덜트 브랜드를 출시했다. 엄 차장이 키덜트 관련 제품을 기획·제작하면 이를 해머 브랜드로 판매하는 방식이다. 해머 브랜드의 핵심 콘셉트는 ‘투트랙’이다. 한편으론 고가 키덜트 제품을 제작하고, 다른 한편으론 대중적인 가격의 상품을 기획해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 결과 나온 제품이 ‘태권브이’다. 그가 태권브이를 판다고 글을 올려놓은 건 지난해 11월이었다. 가격은 만만찮았다. 약 100만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태권브이는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완판됐다. ‘키덜트 연예인’으로 유명한 심형탁 씨는 인스타그램에 “댄디버드 작가님 감사합니다”라며 가이아코퍼레이션을 해시태그(#)로 달아놓을 정도였다. 엄 차장은 “향후 우리나라 유명 로봇 IP를 포함한 ‘레전드 로봇 시리즈’를 출시해 라인업을 넓힐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어벤져스 스노우볼’은 가이아코퍼레이션의 ‘대중화’ 전략이 적중한 제품이었다. 어벤져스 스노우볼은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맞춰 출시된 제품이었는데, 시장에 나온 지 한 달 만에 5,000여개가 팔렸다. 엄 차장이 어벤져스 스노우볼을 기획하면, 가이아코퍼레이션에선 이를 공장을 통해 생산하는 방식이었다.
엄 차장은 “덕업일치(취미와 일이 같아진다는 의미의 신조어)를 이루면서 역으로 취미가 없어졌다”고 농을 던졌다. 과거엔 ‘취미’였던 피규어 제작을 ‘직장인’으로서 해야 하다 보니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이었다. 그러나 전업 작가들이 키덜트 업계에서 보다 활발하게 활동했으면 하는 그의 바람은 사뭇 진지했다. 엄 차장은 “최근 들어서 회사와 협업하는 전업 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들이 키덜트 업계에서 일할 기회가 늘어야 우리나라 키덜트 산업도 활기를 띨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파주=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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