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창간기획]日 '일하는 방식' 일사천리 개혁...韓노동시계는 기득권·정쟁에 스톱

[한국판 노동 4.0 大計 만들자]

日, 산업구조 변화·고령화 고려

지난해 6월 법제화까지 마무리

한국은 생산성 위기 아우성에도

유연근로제 도입 6년째 헛바퀴





# 구로디지털단지에서 게임 업체를 운영하는 A대표는 “밤에 일하고 싶다”는 직원들의 요구를 애써 무시하고 있다. 취업하기 전부터 ‘밤 제작’에 익숙해졌는데 오전9시에 출근시키면 컴퓨터 앞에 ‘시체’처럼 앉아 있다는 게 직원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밤 근무를 시키자니 A대표로서는 ‘오후10시부터 다음날 오전6시 사이’에 일하면 야간근로 수당 50%를 가산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이 걸린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해도 심야수당 지급은 필수다. 재계 관계자는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1개월에서 확대해달라는 요구도 정부가 들어주지 않는데 심야수당까지 건드릴 수 있겠느냐”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보기술(IT)의 급격한 발달로 산업 및 노동구조가 빠르게 다변화되고 주 52시간 근로제로 업무시간마저 줄고 있지만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유연근로제는 첫발도 떼지 못하고 있다. 재계는 탄력근로제,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확대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지만 6년 넘게 헛바퀴만 도는 모양새다. 장시간 근로의 개선을 근로제도를 전반적으로 손질하는 계기로 삼았던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2013년 5월 펴낸 ‘선진국 사례로 본 유연근무제 확산방안 연구’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월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근로시간제도 개선을 위한 경영계안’을 서울경제가 분석한 결과 두 보고서 모두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3개월→1년 확대와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활용 제고 등을 공통적으로 요구했다. 근로시간 제도 개선을 위한 경영계의 요구가 6년 동안이나 이뤄지지 못하면서 되풀이되고 있다는 얘기다. “계절적 요인으로 특정한 분기에 일이 많은 것처럼 분기별로 업무량의 변화가 큰 근로 형태에 활용하려면 단위기간 3개월로는 불충분하다”는 상의의 2013년 설명은 올해 경총의 “집중·연속적으로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할 경우 현행 3개월 단위로는 시장 수요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주장과 정확히 일치했다. 상의는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선택적 근로시간제가 전문직이나 사무직에만 국한돼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총은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탄력근로제와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최대 단위기간은 2013년과 현재 모두 각각 3개월, 1개월에 불과하다. 2017년까지만 해도 유연근로제는 장시간 근로 관행의 개선과 일과 삶의 조화, 기업 경영의 효율성 제고, 저출산·고령화 추세 대응 등 변화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대응책의 성격을 띠었지만 지난해 2월 ‘52시간 근로제’가 법제화되며 보완입법의 의미가 커졌다.



재계는 최근 우리나라와 근로상황이 비슷한 일본의 예를 근로시간 단축의 모범사례로 들고 있다. 2015년 일본 1위 광고회사 덴쓰에서 월 105시간이 넘는 잔업에 시달리다 여성사원이 사택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한 후 일본 정부는 ‘일하는 방식 개혁’을 추진해 지난해 6월 입법을 마쳤다. 같은 해 2월 52시간 근로제를 입법한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에 정책이 입안됐지만 일하는 방식 개혁에는 ‘잔업 상한 시간 월평균 80시간 초과 금지’라는 근로시간 단축 외에도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연봉 1,075만엔, 약 1억1,750만원 이상의 고소득자는 야근 추가수당 지급 대상자에서 제외) 도입 △플렉스 타임제(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1개월에서 3개월로 연장 등이 포함됐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일하는 방식 개혁’ 추진의 필요성으로 △2065년 기준으로 생산가능인구가 51.4%로 줄고 고령화율은 38.4%로 치솟을 것으로 예상 △70세 이상 정년 연장에 60대 이상 65.9%가 동의 △30~39세 여성의 취업률 하락 등을 제시했다. 4차 산업혁명 시기에 발맞춘 노동제도 개선을 함께 고려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근로시간 단축을 전반적인 노동제도 변화의 계기로 삼았어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산업구조의 변화와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을 반영한 노동 4.0이 포함됐어야 하는데 그런 고민이 사실상 근로시간 단축에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 오로지 장시간 노동에 대한 시정만 있었던 것”이라며 “국가가 할 일은 일률적 규제가 아니라 자율과 유연을 보장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건강 훼손에 대해 제도적·체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는 데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