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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_레터] 우리는 '아침마다 죽음을 목격하는' 호스피스 간호사입니다





“지금 당장 머릿속에 당신이 원하는 임종 장면을 떠올려보라.”

10년 넘게 완화치료 간호사로 일한 샐리 티스데일가 쓴 저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의 첫 문장입니다.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조언이 담긴 이 책은 7월 국내 베스트셀러 명단에 오르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죠.

이처럼 요즘에는 편안하게 삶을 마무리하는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실제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일명 ‘존엄사법’이 시행된 지 1년 5개월 만인 지난 7월 약 5만 4,000명의 환자가 존엄사를 택했다고 합니다. 하루에 약 100명의 환자가 인간답게 죽기 위해 연명치료를 거부한 셈이죠.

호스피스 병원은 바로 이처럼 삶을 이어가는 것만이 목적인 연명 의료 대신 ‘아름답고 존엄한 죽음’을 원하는 말기 환자들이 찾는 곳입니다. 2019년 현재 국내 입원형 호스피스 전문기관은 총 85곳인데 대부분 종합병원 산하에 있는 병동형 기관으로 운영되고 있죠. 치료를 받다가 더 이상 치료가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때 옆 건물의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는 식입니다. 하지만 1993년 처음 문을 연 샘물호스피스는 조금 다릅니다. 이곳은 호스피스 환자들만을 위한 전문적인 공간입니다. 샘물호스피스는 이런 독립형 시설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곳입니다.

바로 이곳, 샘물호스피스에서는 매일 아침마다 죽음을 목도하며 임종기 환자들을 돌보는 간호사들이 있습니다. 환자의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돌보는 염신숙(63) 간호사와 최금실(35) 간호사를 만나 호스피스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마지막을 더 잘 보내드리려면 연륜이 필요하죠”

일반 간호사의 평균 연령은 35세입니다. 그에 비해 호스피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 연령대는 다소 높은 편이죠. 단기 치료를 제공하는 급성기 병원과 달리 호스피스 병원은 환자가 죽기 전까지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신체적·정서적·영적 돌봄을 제공합니다. 따라서 연륜과 경험이 있는 간호사가 필요하고, 연륜과 경험이 있을수록 호스피스 병원에 적응하기도 쉽습니다.

염 간호사는 30여 년 전 일반 간호사로 일하면서 10년 동안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이때의 경험이 계기가 되어 현재 샘물호스피스에서 일하고 있죠.

오랜 경력답게 말기 환자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낸다는 염 간호사에게도 조금 어려운 상대는 있습니다. 바로 환자의 보호자들.

“종합병원에 있다가 호스피스로 건너온 보호자들은 ‘간호사들 나이가 너무 많다’는 얘기도 자주 해요. 하지만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호스피스 간호사는 아무나 하기 어려워요. 어느 정도 경험이 있어야 상황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죠.”

그의 말처럼 이곳에서는 막내 간호사의 경력도 무려 10년이라고 합니다. 여느 병원에서는 베테랑 소리를 들을법한 연차죠. 샘물호스피스의 막내인 최 간호사는 지난해 일반 병원에서 함께 일했던 수간호사의 추천으로 이곳에 왔다고 합니다.

“젊은 간호사들의 경우 임종 방(소천이 임박한 환자가 죽음을 맞이하는 방)에서 이뤄지는 케어를 보곤 정신적 충격을 받아 방을 나가버리기도 해요. 주삿바늘 하나 꽂는 기술도 연륜에 따라 다르지만, 무엇보다 마지막을 준비하러 온 환자가 있는 여기서는 말 한마디도 허투루 할 수 없기에 더욱더 연륜이 필요한 것 같아요.”





■“죽음은 누구에게나 낯설어…‘그동안 애쓰셨다’ 말씀드리죠”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암 사망 환자 7만 8,863명 중 1만 7,317명이 호스피스 서비스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한 신규환자 수가 1만 5,123명에 달했죠. 이용자 수가 점점 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앞으로 호스피스 환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2017년 8월부터는 암 외에도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 △후천성면역결핍증 △간경화 환자도 가정형·자문형 등 완화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다만 호스피스 전문기관 입원은 여전히 암 환자만 이용 가능하죠. 때문에 이들 간호사들이 만나는 환자들은 모두 말기 암 환자들입니다.

염 간호사는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은 후에도 계속 삶의 끈을 놓지 못하는 환자들을 만날 때마다 많이 안타깝다고 말합니다. 최 간호사 역시 “호스피스에서도 치료에 대한 기대가 많이 남아, 나중에 큰 병원으로 돌아가서 다시 항암치료를 받겠다는 환자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물론 환자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습니다. “저희는 환자와 보호자의 의견을 존중해 원하는 대로 해드린다”는 게 이들의 말입니다.

국립암센터에 의하면 말기 암환자의 평균 여명은 3~4개월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예측일 뿐 그 누구도 남은 시간을 정확하게 알 수 없죠. 언제나 두려움을 품고 있는 환자들을 위해 호스피스 간호사들은 적어도 이들이 평소 아프지 않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다고 합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외롭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게 보내드리기 위해 애를 쓰죠.

“보통 죽음을 앞둔 환자라도 청력은 마지막까지 살아있다고 해요. 평소에 같이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누던 환자가 마지막을 맞이할 때 ‘그동안 애쓰셨다’고 평온히 말씀드리려고 해요”(염신숙 간호사)





■누구나 아름다운 마무리를 선택할 수 있기를

호스피스 간호사에게는 의료 지식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이해와 존엄사와 같은 윤리적 문제, 사별한 가족과의 소통 등 인문학적 지식도 요구됩니다.

2009년부터 보건복지부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규칙에 따라 호스피스·완화의료 필수인력인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를 대상으로 표준교육을 진행하고 있죠. 호스피스 간호사가 되려면 총 60시간, 7주에 걸쳐 △환자의 통증 및 증상관리 △심리 사회적 돌봄 등 호스피스·완화의료의 중요한 핵심 주제를 배우고 실습해야 합니다.

좀 더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더 공부하는 의료인도 많습니다. 최 간호사도 그런 의료인 중 한 명이죠. 최 간호사는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 관련 석사학위를 취득할 계획도 가지고 있죠. 환자의 통증이 어떤 통증인지, 어떻게 해야 환자가 고통을 더 줄이고 더 편안한 마음으로 마지막을 맞을 수 있을지를 공부해 조금이라도 더 환자의 임종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그는 말합니다.



이런 의료인들의 노력 덕분인지 호스피스 서비스 이용자들의 만족도는 높습니다. 2017년 조사에 따르면 이용자의 97%가 호스피스 전문기관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만족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관이 많지 않다는 것은 다소 아쉬운 지점입니다. 현재 요양병원을 포함해 호스피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은 98개, 병상 수는 1,546개에 불과한 수준이죠. 때문에 샘물호스피스만 하더라도 입원 대기 중인 환자가 보통 50~60명에 달합니다. 기다림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도 많죠.

전문가들은 현재 국내 호스피스 병상이 인구 100만 명당 병상이 30개 정도에 그치고 있지만 적어도 50개까지는 늘려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정부도 지난 6월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을 발표해 2023년까지 가정형 호스피스 서비스를 확대한다고 밝혔죠. 하지만 통증이 심하거나 돌볼 사람이 없는 말기 환자들을 위해 입원 시설 확장에 대한 관심도 필요합니다. 아니, 가정형·자문형·입원형 등 서비스의 형태에 관계없이 누구나, 자신이 원한다면 인간다운 마무리를 선택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글=황민아 인턴기자 nomad@sedaily.com 영상제작=황민아·김민주·정현정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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